서학개미의 해외 투자 자금을 국내로 유턴시키기 위한 ‘국내시장 복귀계좌(RIA·Reshoring Investment Account)’가 23일 예정대로 출범했다. 도입 근거인 ‘환율 안정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업계는 세제 혜택 소급 적용을 전제로 제도를 먼저 시행하는 이례적 방식을 택했다. 정책 신뢰 논란과 함께 증권사 간 고객 유치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금융투자협회는 최근 주요 증권사에 RIA 출시 지침을 전달했고, 업계는 일제히 관련 서비스를 개시했다. 여야가 향후 법안 통과 시 세제 혜택을 소급 적용하기로 합의하면서 제도 추진의 최소한의 명분은 확보했다. 다만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출시 후입법’ 구조로 정책이 추진되면서 형평성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RIA는 해외 주식을 매도한 자금을 원화로 환전해 국내 주식에 재투자하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는 계좌다. 지난해 12월 24일 이전 보유한 해외 주식을 계좌로 이전해 매도하고, 국내 주식을 1년 이상 보유하면 세제 혜택이 적용된다. 감면율은 복귀 시점에 따라 올해 5월까지 100%, 7월까지 80%, 연말까지 50%로 차등 적용된다. 혜택 한도는 전 증권사 합산 5000만원이다.환율 안정·수급 개선 기대에도 효과는 미지수…고환율이 최대 변수정책의 핵심 목표는 고환율 국면에서 해외 투자 자금을 국내로 환류시켜 외환시장 안정과 증시 수급 개선을 동시에 도모하는 데 있다. 실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해외 주식 매도 후 원화 환전이 늘어날 경우 달러 매도 수요가 증가해 환율 안정에 일부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다만 정책 효과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경우 해외 자산 보유만으로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자들의 국내 복귀 유인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지정학 리스크 등으로 달러 수요가 확대될 경우 RIA를 통한 자금 유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이와 동시에 증권사 간 마케팅 경쟁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개설 지원금 지급과 환전 수수료 우대, 타사 이전 고객 추가 혜택을 내걸었고, 메리츠증권은 미국 주식 매도부터 국내 주식 매매까지 전 과정 수수료 ‘완전 제로’를 선언했다. 유안타증권은 매도 수수료와 거래세 면제, 삼성증권은 국내 주식 수수료 우대와 환율 100% 우대를 제공하며 고객 확보에 나섰다. 신한투자증권 역시 전용 잔고 관리 기능과 투자 가이드를 내세워 차별화에 나섰다.
다만 RIA의 실질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핵심 변수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안팎의 고환율 흐름을 이어갈 경우 해외 자산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자들이 굳이 국내로 자금을 옮길 유인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 지정학 리스크 등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달러 강세 압력이 유지되면서 해외 주식 선호도 역시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또한 세제 혜택이 최대 5000만원 한도로 제한된 점도 대규모 자금 이동을 유도하기에는 한계로 지목된다. 단기적으로 일부 자금 유입은 가능하겠지만, 구조적으로 해외 투자 비중이 크게 축소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업계에서는 이 같은 경쟁이 단순 이벤트 수준을 넘어 ‘과열’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법적 기반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과도한 마케팅이 투자자 오인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세제 혜택이 소급 적용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한 홍보가 향후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경우, 투자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RIA가 국내 증시의 하방을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제기된다. 1년 이상 국내 주식 보유 조건이 단기 매매 중심의 투자 패턴을 중장기 투자로 전환시키는 ‘락인 효과’를 유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업계 한 관계자는 "결국 RIA는 정책 속도전과 시장 유인이라는 두 축 위에서 출발했지만, 법적 공백과 과열 경쟁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입법 마무리와 시장 신뢰 확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대했던 ‘서학개미 귀환’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