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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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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쿠팡 창업자 청문회에서 볼 수 있길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물류센터를 직접 짓겠다고? 안 될 거야.” 이커머스 플랫폼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가 초창기 물류센터를 직접 건설·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을 때 업계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투자비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뿐 아니라 대한통운과 같은 전문 물류회사도 있는데 큰돈이 드는 일을 직접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전국에 하나둘 들어선 물류센터와 배송센터는 저녁에 시켜도 새벽에 오는 쿠팡만의 차별화된 빠른 배송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연간 매출 36조원(2024년 기준), 영업이익 1조2800억원을 내는 국내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이자 미국 뉴욕거래소 상장사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된다’는 확신으로 밀어붙인 김범석 창업자의 뚝심과 혁신이 통한 것입니다.쿠팡은 실적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데, 2023년 창사 13년 만에 흑자를 낸 이후 거의 매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성공입니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국민 절반이 넘는 3370만명의 이름과 주소·전화번호에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고객의 실생활과 밀접한 민감 정보가 유출되면서 제2, 3의 피해가 우려돼 소비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개별 고객에게 유출 정보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추가 피해 예방 및 배상 계획을 신속하게 제시하는 게 필요한데, 그렇지 못해 소비자의 불안과 불만이 아주 큰 상황입니다. 현재 쿠팡을 대체할 이커머스 서비스가 마땅치 않아 ‘탈팡’(쿠팡 회원 탈퇴) 규모가 크지 않지만, 사퇴가 장기화되면 고객 뿐 아니라 판매자들도 이탈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압박도 최고 수위입니다. 금융감독원·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민관합동조사단 조사와 경찰의 압수수색에 이어 최근 며칠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직접 쿠팡 사태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대책 마련 및 엄정 조치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또 쿠팡의 국내 법인은 물론이고 미국 본사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도 추진되고 있어 쿠팡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리더의 책임 있는 태도입니다. 김범석 창업자는 사태 발생 이후 직접 사과하거나 사태 수습책을 얘기한 적이 없는데요, 사람들은 그가 미국 국적자이고 본사도 미국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최태원 SK 회장이 SK텔레콤 해킹 사태 때 대국민 사과를 했듯이 국내 회사였다면 당연했을 최고경영자의 사과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김범석 창업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여지는데, 이래서는 무너진 신뢰를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국회는 12월 17일 개최하는 쿠팡 청문회에 김범석 창업자이자 미국 본사 쿠팡아이엔씨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6명의 쿠팡 측 인사를 증인으로 불렸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 박대준 대표가 사임하고 미국 본사인 쿠팡아이엔씨의 해롤드 로저스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이 임시 대표로 선임돼 김 창업자가 직접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을 높게 봤는데, 이 전망만큼은 빗나가길 바랍니다. 지금 쿠팡에 필요한 것은 변명이나 회피가 아니라 김범석 창업자가 책임 있게 응답하는 모습이며, 이것이 사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점입니다.

2025.12.14 06:00

2분 소요
와인 애호가들이 포르투갈로 향하는 이유 [홍미연의 와인 스토리:지(知)]

전문가 칼럼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찾는 한국인의 발걸음이 뚜렷하게 늘고 있다. 팬데믹 기간 억눌렸던 이동이 회복된 2024년, 한국의 해외 출국자는 2868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그중에서도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향하는 수요는 한층 강화되는 추세다. 스페인은 2024년 약 940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며 전년 대비 약 10% 증가했고, 아시아 시장 중에서도 한국의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포르투갈 역시 한국발 수요가 숙박 기준 32.6%, 방문자 기준 34.3% 증가하며 시장 규모 대비 성장률이 특히 높은 국가로 기록됐다.스페인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중심의 여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면, 포르투갈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물가, 비교적 양호한 치안, 친절한 현지 문화 등을 기반으로 포르투갈은 빠르게 매력도를 높여가고 있다. 포르투갈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마데이라 섬까지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 넓게 분포해 있다는 점도 여행지 선택의 폭을 넓히는 요소다. 최근 리스본 직항 노선이 개설된 것 역시 이러한 관심 확대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이러한 흐름 속에서 본 글은 포르투(Porto), 도우루(Douro), 비뇨 베르드(Vinho Verde)를 중심으로 포르투갈 북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와인 산업과 관광 구조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포르투의 재해석, 포트와인 저장고에서 체험지대로포르투 도심에 도착하면 먼저 마주하는 풍경은 강 건너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다. 포트 와인의 이름은 포르투에서 비롯되었지만, 실제 숙성과 저장 시설은 기류와 습도 관리에 유리한 강 건너편에 자리해 왔다. 이는 역사적으로 효율적인 숙성과 선적을 위한 산업적 전략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세계적 포트 하우스들의 중심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가이아 일대는 단순 저장 시설을 넘어 ‘와인 산업의 기억·데이터·체험’을 결합하는 복합 지대로 확장되는 중이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문을 연 복합 문화 단지 ‘WOW’(World of Wine)다. 약 5만5000㎡ 규모의 이 공간에는 와인 박물관·전시관·테이스팅룸·교육 시설·상점·레스토랑·호텔까지 집약돼 있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품종·기후·토양·양조·숙성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도록 설계된 일종의 ‘와인 아카데미 단지’에 가깝다. 포트와인의 유산을 기반으로 한 숙박 모델도 포르투의 매력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최근 문을 연 ‘티볼리 코프케 포르투 가이아’(Tivoli Kopke Porto Gaia) 호텔은 그 대표적 사례다. 이 시설은 오래된 코프케(Kopke) 저장창고의 상부에 신축된 구조로,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와인 산업의 시간적 자산을 공간적으로 재조합한다. 와이너리 창립 연도인 1638년을 식당 이름에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은 브랜드 유산을 현대적 서비스 경험에 직접 연결하려는 명확한 전략이다. 지하 셀러에는 포트 와인의 숙성고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방문객에게 ‘살아 있는 저장고’라는 인상을 준다. 포트 와인을 처음 접하는 여행자에게 이곳은 단일 호텔 체험을 넘어, 도시가 와인을 기반으로 산업·역사·관광을 어떻게 결합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교육적 통로가 된다. 유산을 경제적 자원으로 전환하는 포르투의 방식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포르투가 유산을 체험 산업으로 확장하는 또 다른 방식은 미식과 와인을 통합한 축제를 통해서다. 대표적으로 매년 열리는 ‘ALIVE TASTE’가 있다. 이 행사는 포르투갈 주요 와이너리와 셰프들을 한 공간에 모아, 국가의 와인 생산 체계와 식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사례 모두 단순 관광자원이 아니라, 도시가 와인 산업의 역사와 현대적 소비 패턴을 어떻게 엮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인프라라는 사실이다. 숙박은 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축제는 생산자·셰프·소비자를 연결하는 시장의 중간지대로 작동한다. 포르투가 최근 수년간 해외 방문객 증가와 함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배경에는 이러한 유산 기반 체험 산업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자리한다.새롭게 도약하는 포르투갈 북부 와인도심을 벗어나 도우루 계곡으로 들어서면 브랜딩 이전의 ‘생산지의 얼굴’이 더욱 선명해진다. 가파른 테라스형 포도밭이 이어지는 이곳은 여름 기온이 40도 이상까지 치솟고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극단적인 일교차를 보인다. 도우루는 수 세기 동안 포트 와인의 원료 산지로 기능해 왔으나, 최근에는 드라이 와인이 독자적인 장르로 성장하고 있다. ▲투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투리가 프랑카(Touriga Franca) ▲틴타 로리스(Tinta Roriz)가 주요 적포도 품종이며, ▲말바시아 피나(Malvasia Fina) ▲라비가투(Rabigato) ▲비오지뉴(Viosinho) ▲고베이오(Gouveio)는 화이트 와인의 기반을 이룬다.도우루에는 생산과 체험을 결합한 숙박형 와이너리도 늘고 있다. 퀸타 두 벤토젤루(Quinta do Ventozelo)는 대표적 사례로, 도우루의 극적인 경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해 지질·기후·경관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설계된 공간이다. 많은 와인 전문가들이 이곳을 ‘도우루를 가장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장소’로 언급하는 이유다.포르투갈 화이트 와인의 핵심 산지인 비뇨 베르드(Vinho Verde)는 동일한 이름의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대서양 기후의 영향 아래 높은 산도와 경쾌한 스타일이 특징이다. 주요 품종은 ▲알바리뉴(Alvarinho) ▲로레이루(Loureiro) ▲아베쑤(Avesso)로, 각 품종은 지역의 미세한 기후 차이를 반영한다. 비뇨 베르드를 이야기할 때 ‘스타 양조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지역의 정체성을 국제 시장에 각인시킨 대표 인물은 소알레이루(Soalheiro)의 루이스 세르데이라(Luís Cerdeira)다. 그는 2024년 회사를 떠나 아들 마누엘과 새로운 프로젝트 ‘Vinevinu’를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동일 품종이라도 해안과의 거리, 고도, 경사 등 미세한 지형적 요소가 와인의 구조와 질감을 어떻게 달리 만드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다. 이는 비뇨 베르드가 ‘가벼운 화이트’라는 통념을 넘어, 테루아 해석에 따라 충분히 구조적이고 개성 있는 와인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포트 와인: 전통적 제조 방식에서 현대적 소비까지포르투갈의 상징과도 같은 포트 와인에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이 주정 강화 와인은 17세기 도우루에서 영국으로 와인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효가 중단된 상태로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증류주를 첨가하면서 탄생했다. 알코올 도수가 약 15%에 이르면 발효가 중단되기 때문에 포도에 남아 있던 자연 당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최종 알코올 도수는 19~22%까지 올라간다. 그 결과 단맛, 구조, 알코올이 균형을 이루는 독특한 스타일이 완성된다.숙성 방식에 따라 포트 와인은 크게 루비(Ruby)와 토니(Tawny)로 구분된다. 루비는 대형 탱크에서 비교적 짧게 숙성돼 신선한 과실 향이 중심을 이루고, 토니는 소형 오크 캐스크에서 장기 산화 숙성을 거쳐 견과류, 카라멜, 말린 과일의 풍미가 층위를 이룬다. 샴페인의 밀레짐처럼 가장 뛰어난 작황에만 생산되는 빈티지 포트(Vintage Port)는 단일 연도의 포도로 양조해 병 속에서 오랜 세월 숙성되며 ‘포트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반면 LBV(Late Bottled Vintage)는 단일 빈티지를 4~6년간 오크에서 숙성한 후 병입하는 방식으로, 빈티지 포트보다 접근성이 높아 시장에서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백포도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포트(White Port)가 칵테일 시장과 만나며 소비층을 새롭게 확장하고 있다.포르투에서 도우루, 비뇨 베르드로 이어지는 북부 와인 벨트는 이제 관광 자원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저장고는 체험 시설로 재편되고, 생산지는 숙박과 교육 기능을 흡수하며, 포트 와인은 전통 소비층을 넘어 시장을 넓히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신규 수요의 증가는 이러한 변화에 분명한 상업적 동력을 제공하고 있으며, 지역 생산자들 역시 이에 맞춰 제품군, 경험 프로그램, 관광 인프라를 재정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확장이 단순한 방문객 증가에 그치지 않고, 와인 산업 전반의 가치사슬인 생산, 브랜딩, 유통, 체험이 동시에 고도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르투갈 북부는 이 구조적 전환의 전면에 서 있으며, 향후 수년간 아시아 수요를 포함한 외부 시장과의 연계가 지역 경제에 어떤 형태의 장기적 이익을 가져올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홍미연 씨엠비 와인앤스피리츠 CTO

2025.12.13 10:00

6분 소요
“센스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생각하는 힘이다”[새로 나온 책]

The Sense : 당신도 센스가 있다“센스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으로부터 느끼고, 끝까지 생각하는 힘이다.” 세계 광고계가 주목하는 크리에이티브 리더, TBWA하쿠호도 CCO 호소다 다카히로는 ‘센스’의 본질을 탐구한 책 ‘The Sense : 당신도 센스가 있다’를 통해, 논리와 감성의 균형으로 일과 삶을 다시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한다.저자는 “AI와 데이터가 모든 답을 내놓는 시대일수록 감각의 언어, ‘센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번 책은 감각과 논리의 경계에서 창의성을 길러온 저자가 30년간의 현장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센스를 단련하는 법’을 구체적 사례와 함께 풀어낸 책이다. 도요타, 소니, 유니클로, 산리오, 닌텐도 등 일본 대표 브랜드들의 크리에이티브 현장에서 그가 얻은 통찰이 살아 숨쉰다. 호소다는 말한다. “센스란 감정의 섬세함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센스 있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본다. 그들은 상식을 의심하고, 과거를 재상상하며, 데이터 대신 마음을 읽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센스는 감각이 아니라 훈련”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독자가 자신만의 창의적 감각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세계미래보고서 2026-2036AI의 발전은 범용 인공지능인 AGI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인간과 동등하거나 그보다 더 똑똑한 기계 지능의 탄생을 뜻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인간을 뛰어넘는 AI 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이 흐름에 동참하는 중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적인 존재는 인간이다. 그런데 만약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를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계미래보고서 2026-2036’은 이미 시작된 AGI가 미래 지도를 어떻게 그려나갈지를 미리 보여준다. AGI의 출현과 로봇의 급증, 기술 실업률 증가와 노동의 위기, 기본소득 사회와 무료 주택 시대, 대학의 종말, 기후 목표 사망, 전 세계 1시간 이동권 시대, 의식주 변화까지 AGI가 일상이 되는 시대를 담았다. 동시에 인간을 뛰어넘는 기계 지능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물론 인간다움을 지키며 AGI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퀀텀의 시대양자역학과 양자컴퓨터의 탄탄한 입문서로 자리매김한 ‘퀀텀의 세계’ 이순칠 교수가 신작 ‘퀀텀의 시대’로 돌아왔다. 이순칠 교수는 첫 책을 출간한 뒤 ‘그래서 어떤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최종 승자인가요?’라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이 책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서 양자기술이 가져올 미래의 변혁과 이를 선도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다양한 양자컴퓨터기술의 강점과 약점, 실용화 요건을 깊은 통찰로 이해하기 쉽고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양자물리의 등장은 인류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학문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저자는 이를 문명의 첫 번째 퀀텀 점프, 즉 비약적 도약으로 보는 한편, 양자물리를 응용한 양자기술이 경제와 산업 전반에 변혁을 몰고 와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를 이룩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대한민국 양자정보 1세대 연구자이자 최근까지 한국연구재단 양자기술단장을 맡으며 늘 양자컴퓨터 개발의 중심에 있던 저자는 남다른 통찰력으로 양자물리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함으로써 현재의 양자기술 수준을 짚어내고 우리의 대처까지 제시한다. 한층 가까이 다가온 변혁의 문턱에서 이 책은 양자기술의 흐름을 읽어내는 눈을 길러줄 것이다. 하버드 문과생의 과학 수업하버드는 왜 문학과 철학, 정치와 경제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칠까? 하버드대학교 학부 교육의 핵심은 ‘교양’이다. 다시 말해 폭넓은 교양 교육으로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 같은 취지로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개설한 과학 입문 강좌를 ‘하버드 문과생의 과학 수업’에 옮겨 담았다.샤피로 교수는 과학이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배울수록 더 많이 질문하게 된다고 말한다. 질문이 탐구로 이어져 이해에 이르며 또 다른 질문으로 더 멀리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버드 문과생의 과학 수업’을 통해 질문에서 시작해 자연을 바라보는 인류의 관점을 뒤바꾼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을 살펴보며, 그 발견들이 또 어떤 새로운 질문들로 확장됐는지 확인해 보자.

2025.12.07 13:00

3분 소요
2028 대입 내신·수능 동시 개편… 새 판 마주하는 고1 [임성호의 입시지계]

전문가 칼럼

2028학년도 대입부터 학교 내신과 수능 제도가 전면 개편된다. 적용 대상은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로, 이들은 새로운 평가 체계를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달라지는 대입, 첫 타자는 고1현재 고1 학생들은 1학기 내신을 마무리한 상태다. 내신 체계는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전환됐다. 또한 2028학년도 수능에서는 문·이과 통합 체제가 도입되며 사회탐구·과학탐구 2과목을 모두 응시해야 한다. 두 과목의 문항 수는 기존 20문항에서 25문항으로 늘어나고, 배점 역시 2·3점 체계에서 1.5·2·2.5점으로 변경된다. 현 고1 학생들은 올해 3·6·9·10월 총 네 차례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렀다. 이 중 6·9·10월 시험에서 개편된 2028 수능 방식이 적용됐다. 3월 시험은 중학교 범위 기반 평가였고, 사탐·과탐은 기존 절대평가로 진행됐다.내신 5등급제를 처음 적용받는 현 고1의 1학기 성적 분포는 교육계의 높은 관심을 모았다. 서울 지역 고교를 기준으로 전 과목 1등급을 받은 학생 수는 9등급제 대비 약 10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고의 경우 전체 학생 중 약 2%가 전 과목 1등급이었고, 자사고는 약 1.4%, 특목고는 약 0.4% 수준으로 확인됐다.학교알리미 공개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고1 학생들의 학교 내신에서 통상 90점 이상에 해당하는 A등급 비율은 일반고 기준 국어 23.0%·수학 21.4%·영어 24.5%·사회 25.9%·과학 23.7%로 주요 5개 교과 모두 20%를 넘겼다.특목·자사고는 일반고보다 A등급 비율이 훨씬 높다. 국어 53.2%·수학 44.7%·영어 47.4%·사회 46.3%·과학 50.6%로 일반고 대비 대략 두 배 수준을 보였다.그러나 수능 모의고사 성격의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는 내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국어의 경우 90점 이상 비율은 3월 1.2%·6월 2.1%·9월 0.8%·10월 4.7%에 불과했다. 80점대 비율도 3월 5.8%·6월 5.9%·9월 4.1%·10월 9.3% 수준이었다.수학 역시 난도가 높게 나타났다. 90점 이상 비율은 3월 1.2%·6월 1.1%·9월 1.1%·10월 3.2%였다. 80점대는 3월 3.5%·6월 4.1%·9월 5.2%·10월 5.0%로 집계됐다.과학탐구는 50점 만점 기준 45점 이상 비율이 6월 6.9%·9월 10.8%·10월 8.7%로 나타났다. 중학교 범위였던 3월 절대평가에서는 40점 이상 비율이 4.1%였다. 당시 절대평가 등급 기준은 1등급 40점 이상, 2등급 35점 이상 등 5점 단위 9등급 체계였다.사회탐구는 45점 이상 비율이 6월 10.1%·9월 6.9%·10월 3.2%로 확인됐다. 절대평가로 시행된 3월에는 40점 이상 비율이 16.6%였다.영어는 90점 이상인 1등급 비율이 3월 8.0%·6월 13.5%·9월 6.2%·10월 10.6%였다. 80점대 2등급은 3월 10.3%·6월 12.2%·9월 8.5%·10월 13.9%로 나타났다.2025학년도 서울권 대학 학생부교과전형 평균 합격선은 인문계 2.58등급, 자연계 2.08등급이었다. 이를 새 5등급제로 환산하면 인문은 약 1.6등급, 자연은 약 1.4등급 수준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금년도 입시 결과는 인문 3.05등급, 자연 2.71등급으로, 5등급제로 환산 시 두 계열 모두 1.8등급으로 추정된다. 내신 성적, 수능 모의평가 사이 괴리도고1 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 성적과 수능 모의평가의 체감 난도 사이에서 상당한 괴리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각 고교 유형 간 내신 최상위권 비율에서도 뚜렷한 차이로 나타나며, 이러한 격차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1학기 종료 시점에서 내신 등급이 목표 대학 입시에 불리하게 형성된 학생들의 대응이 학교마다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내신 등급은 개인 실력뿐 아니라 소속 학교의 학생 수와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고1이 끝난 시점에서 이미 내신으로 목표 대학 접근이 사실상 어려워진 학생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단순히 학생 개인에게 ‘적성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라’고 조언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신과 수능 간 평가 구조의 격차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학교 차원에서 내신 출제와 평가의 적정성, 수능 대비 전략 등을 고1 단계부터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고교학점제 운영과 수능 준비 과정, 평가 결과 등 주요 정보를 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현 고1은 내신과 수능 모두 기존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입시 경로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학년이기 때문에 어느 한 요소만을 자신 있게 강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5.12.07 11:00

4분 소요
ESG 보상의 함정…형식적 도입은 ‘그린워싱’ 일 뿐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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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선진국 기업들은 이미 임원 보상에 ESG 지표 한두 개를 반영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유럽 주요 기업의 40% 가량이 ESG 평가·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도 임원 성과급에 환경·사회 목표를 연계하는 것이 보편화됐다. 이들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명확하다. ESG 투자가 영업 및 재무 성과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들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이 자신의 산업에서 중요한 ESG 이슈에 집중할 때 장기 주가 성과가 유의미하게 개선된다. 유니레버가 2010년대 신흥국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월등히 높은 매출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사적으로 추진됐던 지속가능성 제고 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국내 시가총액 상위 250개 기업 중 ESG 지표를 임원 보수에 반영하는 기업은 겨우 27곳, 10.8%에 불과하다. 일부 선도 기업들이 2019년부터 최고경영자(CEO) 평가에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시도가 있지만, 이는 소수의 예외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은 ESG 보상 체계 도입에서 선진국 대비 최소 5~10년은 뒤처져 있다.선진국의 형식적 도입, 그 실패의 교훈그렇다면 뒤늦게 출발하는 한국 기업들은 서둘러 선진국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까? 흥미롭게도 먼저 출발한 유럽과 북미 기업들의 경험은 정반대의 교훈을 전한다. ‘빠르게 도입’하는 것보다 ‘제대로 설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일 튀빙겐대학 연구진이 유럽 대형 상장기업 73개사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ESG 지표를 도입한 기업은 많지만 그 지표가 임원 보수 총액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명확히 규정된 ESG 지표의 평균 가중치는 5%에 불과했고, ESG 지표 달성 여부는 전체 임원 보수 총액 변화의 1%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ESG 보상이 진정한 인센티브가 아닌 ‘그린워싱’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결국 문제의 핵심은 ‘형식적 도입’에 있다. 많은 기업들이 ESG 목표를 설정했지만, 그 목표는 처음부터 쉽게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설정됐다. 연구에 따르면 ESG 지표의 수나 가중치가 높을수록 오히려 목표 달성률의 변동성이 낮아지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경영진이 항상 거의 100%에 가까운 목표 달성률을 보장받도록 설계됐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미에서는 ESG 성과급 지급률이 재무 성과급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ESG 목표가 훨씬 느슨하게 설정됐기 때문이다.또 다른 문제는 재량적 평가의 남용이다. 많은 기업이 ESG 목표 달성 여부를 이사회나 보상위원회가 연말에 재량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재량적 평가는 측정이 어려운 ESG 성과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그 재량권이 한쪽으로만 작동한다는 점이다. 재무 실적이 좋을 때는 재량적 ESG 보상이 추가로 지급되지만, 환경 사고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보상을 삭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임원에게는 ‘추가 혜택’만 있고 ‘책임’은 없는 비대칭적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시행착오는 한국 기업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ESG 보상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르게 설계해야 하는가?韓 기업이 달리 출발해야 하는 지점늦게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기회다. 한국 기업들은 선진국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처음부터 실질적인 ESG 보상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것은 ‘의미 있는 가중치’다. 5% 미만의 가중치로는 임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없다. ESG가 진정한 인센티브로 작동하려면 최소 10~15% 이상, 환경 리스크가 높은 제조업이나 화학·에너지 업종의 경우 20% 이상의 가중치를 부여해야 한다. 둘째, 목표의 엄격성이다. ‘지속가능경영 강화’ 같은 모호한 목표는 무용지물이다. ▲탄소 배출량 전년 대비 12% 감축 ▲중대재해 제로 달성 ▲여성 임원 비율 30% 달성처럼 명확하고 측정 가능한 지표를 사용해야 한다. 목표 수준도 재무 목표만큼 도전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달성률이 항상 90% 이상이라면,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확정 지급’에 가깝다.세 번째는 책임의 대칭성이다. 재량적 평가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투명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평가 기준과 결과를 공개하고, 무엇보다도 부정적 ESG 사건 발생 시 확실한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환경 사고·중대재해·인권 침해 등이 발생했을 때 이미 지급된 보상을 환수하거나 향후 보상을 삭감하는 메커니즘을 명문화해야 한다. 보상은 양방향이어야 한다.넷째,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 임원의 책임 범위에 맞춰 생산 부문 책임자에게는 탄소 배출과 안전 지표를, 인사 책임자에게는 다양성 지표를, 구매 책임자에게는 공급망 ESG 지표를 연계하는 식이다. 모든 임원에게 동일한 지표를 부여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흐리고 효과를 반감시킨다.한국 기업들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선진국처럼 형식적으로 ESG 보상을 도입해 10년 뒤 다시 재설계하는 우회로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제도를 구축하는 지름길을 택할 것인가. ESG 보상은 ‘녹색 페인트칠’이 아닌 ‘경영 엔진의 핵심 부품’이 돼야 한다. 늦게 시작하는 만큼, 더 제대로 시작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025.12.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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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엔진’ 영주, 철도 도시의 새로운 실험[김현아의 시티라이프]

전문가 칼럼

앞선 여정에서 봉화가 태고의 자연으로 치유를 건네고, 안동이 유구한 전통으로 정신을 압도했다면, 소백산맥을 넘어 마주한 영주는 사뭇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이곳은 ‘속도’와 ‘직선’의 도시다. 1942년 개통된 중앙선 철도는 고요했던 농촌 마을 영주에 근대라는 엔진을 이식했다. 일제강점기 자원 수탈을 위해 깔린 차가운 쇠길이었지만, 해방 이후 그 길은 산업화의 동맥이 돼 영주를 경북 북부 내륙의 물류 심장부(Logistics Hub)로 재편했다.영주역을 정점으로 사방으로 뻗는 도로망과 철도 관사(官舍)를 중심으로 구획된 주거지는 자연 발생적인 촌락이 아닌, 철도 중심 계획도시의 전형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도시의 흥망은 인프라의 수명과 궤를 같이한다. 석탄 산업 합리화와 고속도로 중심의 국토 개발은 철도 도시에 가혹한 구조 조정을 강요했다. 여기에 인구구조 변화와 광역도시 중심의 성장 전략이 겹치면서 쇠퇴 압력이 커졌다. 2024년 초, 영주시 인구가 심리적 저지선인 ‘10만 명’ 아래로 붕괴된 사건은 단순한 숫자의 감소가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를 지탱해온 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알리는 구조적 경고음이다.2021년 KTX-이음 개통으로 수도권 접근성이 1시간 40분대로 획기적으로 개선됐으나, KTX 개통과 별개로 인구 감소, 소비 패턴 변화 등과 맞물려 대학로 상권 공실이 늘고 있는데, 이는 고속철 개통 시 지적되는 빨대 효과(Straw Effect)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이제 영주에게 필요한 것은 물리적 연결을 넘어, 사람을 머물게 하는 ‘체류의 자석(Magnetism)’을 만드는 일이다. 하드웨어 재생의 한계와 ‘모지코’의 교훈지난 10년간 영주의 도시재생은 ‘공간의 보존’에 방점을 뒀다. 후생시장, 중앙시장, 그리고 관사골로 이어지는 재생 사업은 쇠퇴한 구도심의 물리적 뼈대를 정비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점(點)이 아닌 면(面) 단위로 등록문화재를 지정한 ‘근대역사문화거리’ 전략은 도시의 맥락(Context)을 보존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하드웨어 중심의 재생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난제에 부딪혔다. 잘 지어진 건물도 콘텐츠가 없으면 유령 공간이 된다. 인근 안동이 고택 리조트로, 단양이 레저로 체류형 관광을 선점하는 동안, 영주는 대규모 인프라 확충에도 불구하고,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체험·숙박 콘텐츠는 여전히 더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잠시 일본 기타큐슈의 ‘모지코(Mojiko) 레트로’사례를 살펴보자. 이곳은 영주에 유의미한 벤치마킹 대상이다. 모지코 역시 석탄과 물류 기능 상실로 쇠락했으나, 붉은 벽돌의 근대 건축물을 현대적 감각의 F&B와 야간 관광 콘텐츠로 재해석하여 연간 200만 명이 찾는 명소로 부활했다. 핵심은 ‘과거의 박제’가 아닌 ‘현재적 활용’이다. 영주의 관사골 적산가옥과 풍국정미소 같은 산업 유산 역시 단순 관람용이 아닌, MZ세대가 소비하고 머물 수 있는 힙(Hip)한 상업 공간이나 스테이(Stay) 모델로 과감히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로컬 스타트업이 쏘아 올린 희망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영주에서 감지되는 변화의 기류가 과거의 관(官) 주도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과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바텀업(Bottom-up) 생태계가 싹트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주시와 SK스페셜티, 임팩트 투자사가 협력한 ‘STAXX(스택스) 프로젝트’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단순 기부를 넘어 지역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공유가치창출(CSV) 모델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빈집 재생 노하우를 이식해 공유 주거를 만드는 ‘블랭크(Blank)’, 영주의 풍부한 소나무 자원을 뷰티 제품으로 고부가가치화 한 ‘피노젠’, 지역 농산물로 새로운 F&B 문화를 만드는 ‘리쿼스퀘어’등 혁신적인 소셜벤처들이 영주에 둥지를 틀었다.이들 청년 창업가들은 영주를 ‘소멸 위기 지역’이 아닌 ‘기회의 땅’으로 재정의한다. 수도권의 살인적인 비용과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 고유의 자원(Local Heritage)을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할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인구 10만 붕괴를 넘어, ‘강소(强小) 도시’로의 체질 개선인구 10만 명 붕괴는 충격적인 지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도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절대 인구수의 감소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활동 인구’와 ‘창조 계층’의 소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영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스타트업들의 도전은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중요한 변곡점이다. 봉화의 자연이 쉼을 주고, 안동의 정신이 뿌리를 확인시켜 준다면, 영주의 실험은 지방 도시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생존법’을 제시한다. 과거 영주를 움직인 동력이 증기기관차였다면, 미래의 동력은 골목길 곳곳에서 혁신을 실험하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이다.도시재생은 끝이 없는 과정(Process)이다. 관사골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할매 묵공장’의 온기가 구세대 주민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는 버팀목이라면, ‘스택스’를 통해 유입된 청년들은 도시에 새로운 혈류를 공급하는 펌프와 같다. 신구(新舊) 세대의 이러한 공존과 협업이야말로 지방 도시가 소멸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대안이다.영주는 지금 쇠퇴가 아닌 ‘축소 균형’을 향한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100년 전 기찻길이 도시를 낳았듯, 이제는 혁신적인 로컬 비즈니스가 영주의 다음 100년을 견인할 것이다. 위기 속에서도 움트고 있는 이 작은 변화의 싹들을 주목하고 응원해야 할 이유다.영주의 철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륙의 물자가 모이던 이 거대한 결절점(Node)을 지나, 이제 그 맥박이 닿았던 바다의 끝으로 향한다. 기찻길이 실어 나른 근대의 애환이 가장 짙게 남아있는 항구, 다음 여정은 ‘군산’이다.(다음에 계속)

2025.1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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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뉴노멀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EDITOR’S LETTER]

전문가 칼럼

최근 국내 대표 포털기업 네이버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용사인 두나무가 합병을 공식화했습니다. 네이버는 검색·쇼핑·콘텐츠 결제를 아우르는 국내 1위 포털 플랫폼이고, 두나무는 국내 최대이자 글로벌 3위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사라는 점에서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면 초대형 디지털 금융 생태계가 탄생할 전망입니다. 주목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제도화 바람이 불고 있는 디지털 자산 시장과 관련한 행보인데요, 양 사는 이미 지난 7월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달러 등 특정 자산에 1 대 1로 연동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화폐입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올해 연간 글로벌 거래량이 약 35조~40조 달러로 예상되는데, 2024년 27조~28조 달러보다 1.3~1.5배 증가한 수치입니다. 폭발적인 성장세에 각국의 기업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닌데요, 특히 정치권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여당은 작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1단계) 시행 이후 정부 당국의 2단계 법안(핵심 내용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마련이 지지부진하자 이번 주까지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며 연내 입법화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업계는 늦어질수록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다며 속도전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고환율 문제를 고려하면 빠른 도입이 능사가 아니라는 신중론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역대 최고 수준의 경상수지 흑자에도 원·달러 환율이 1460원대를 넘어 1500원대를 뚫을 기세인데요, 고환율이 장기화하면 고물가·고비용·내수 침체라는 삼중고에 빠지게 돼 실물경제에 큰 타격이 우려됩니다. 문제는 최근 환율을 끌어올리는 힘이 구조적이라는 점입니다. 개인 해외투자(서학개미),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확대, 수출기업의 달러 환전 유보 등이 달러 수요를 상시적으로 높이며 원화 약세를 고착화하고 있습니다.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여기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게 신중론자들의 주장입니다. 지금은 원화를 달러로 바꾸려면 은행 계좌 개설·환전 절차·규제 등 일정한 ‘마찰 비용’이 있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디지털 화폐 형태의 원화로 즉시 달러·비트코인·해외 자산 매수가 가능해지며, 원화 매도·달러 매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금융시장 불안 시에는 ‘탈원화 러시’를 돕는 통로로 기능해 환율 안정성이 더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원화 스테이블코인 준비금 관리 부실·발생사 부도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 한국 금융시스템 자체가 흔들린다거나 통화당국의 자본통제·환율안정 수단이 무력화된다는 등의 우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신중론자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단계적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그냥 도입할 경우 외환시장의 환율 변동성과 자본 유출이 굉장히 걱정된다. 은행 중심으로 먼저 해보고, 외환 나가는 게 잘 통제되면 그다음 순차 확산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1500원대 고환율 뉴노멀에 직면한 상황이어서 속도전보다 신중론이 더 크게 와닿습니다.

2025.12.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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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이후 3년…AI 분야 업&다운, 주목받는 것과 잊혀진 것[한세희 테크&라이프]

전문가 칼럼

필자는 2020년 8월, 이코노미스트 지면에 당시 처음 공개된 오픈AI의 인공지능(AI) 모델 GPT-3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신은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에 AI는 “신은 어디에나 있죠. 우리가 사는 이 시뮬레이션 속에도 물론 있고요”라 답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GPT-3는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와는 또 다른 충격을 줬다. GPT-3 공개는 초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생성형 AI의 잠재력을 세상에 알렸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돼 모든 사람들이 직접 써 볼 수는 없었다. 2년이 지난 2022년 11월 30일, 오픈AI는 챗GPT를 세상에 선보였다. GPT-3를 개선한 GPT-3.5 모델에 대화 인터페이스를 입혀 누구나 채팅 형식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한 AI 서비스다. 드디어 생성형 AI가 모든 사람의 손끝에 닿은 것이다. 챗GPT, 세상을 바꾼 3년놀라움과 열광 속에 챗GPT는 한달 만에 사용자 1억명을 돌파, 틱톡을 제치고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확산된 온라인 서비스가 됐다. 이제 챗GPT 출시 후 딱 3년이 지났다. GPT-3 이후 챗GPT가 나오기까지 2년과 챗GPT가 나온 후 3년의 시간을 비교해 보면, 1년 차이가 아니라 약 10년은 차이나는 시간이 흐른 것 같다. GPT-3가 나왔을 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5년 안에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예언은 거의 사실이 된 듯하다. 지난 3년 간 AI는 과거 PC나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세상을 바꿀 원동력으로 주목받았다. AI 버블이 온 세상을 뒤덮었지만, 정작 이 거품 속에서 누가 진짜 세상을 바꿀 진정한 가치를 주어 시장의 승자가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PC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인터넷의 구글, 스마트폰의 애플 같은 존재가 될 주인공은 아직 안개 속이다. 처음에 이 질문의 답은 명백해 보였다. 바로 오픈AI다. 더 큰 모델, 멀티 모달, 추론 기능 등을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선보이며 AI 발전 방향을 앞장서 제시했다. 반면, 구글이나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헛발질을 거듭했다. 챗GPT 충격 이후 구글이 내놓은 대화형 AI 모델 ‘바드’는 이제 너무나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대화형 AI의 대명사였던 애플 시리는 챗GPT 등장 이후 갑자기 ‘골동품’처럼 느껴지게 됐고, 아직도 나아질 조짐이 안 보인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AI 경쟁 구도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구글은 바드를 ‘제미나이’로 리브랜딩하고 꾸준히 개선 노력을 해 왔고, 이 같은 노력은 지난 11월 선보인 새 모델 ‘제미나이 3’로 결실을 맺었다. 앞서 구글이 내놓은 이미지 생성 모델, 일명 ‘나노 바나나’가 탁월한 성능으로 입소문을 타더니, 나노 바나나 기능까지 결합한 제미나이 3는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오픈AI의 GPT-5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였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가 “3년 간 매일 챗GPT를 썼지만, 제미나이 3를 2시간 사용해 보니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것도 화제가 됐다. 구글, 오픈AI를 넘어설까?세계 최대 검색 서비스 구글이 가진 막대한 데이터와 노하우, 인프라와 컴퓨팅 역량 등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구글은 고가의 엔비디아 칩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개발한 텐서처리장치(TPU) 반도체를 이용해 제미나이 3를 맞춤형으로 훈련시켰다. 검색과 클라우드 인프라,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등 모든 서비스와 단말에 가진 사용자 접점을 통해 수십 억명의 사용자에게 자사 AI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메일, 캘린더, 워크스페이스 등과 연동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물론, 챗GPT의 우위는 아직 뚜렷하다. 챗GPT 주간 사용자 수는 8억명 이상이며, 연말까지 10억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웹 데이터 조사 회사 시밀러웹에 따르면, 챗GPT 웹 버전 월간 방문 횟수는 약 11억회로 1억 500만건을 약간 웃도는 제미나이에 비해 훨씬 크다. 하지만 지속적 AI 개발과 운영, 서비스 확장을 위한 공격적 인프라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검색 광고 수익을 뒷배로 둔 구글과 달리 오픈AI는 개인 및 기업 구독자를 늘려 매출을 일으키면서 이 같은 투자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오픈AI는 소프트뱅크 등과 손잡고 향후 8년 간 컴퓨팅 역량 확대에 1조4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매출은 여전히 불확실한데 투자를 끌어오기 위한 비전은 더욱 담대해지는 느낌이다. 오픈AI가 최근 성인에 한해 AI와 에로틱한 대화를 허용하기로 한 것도 수익화 압박을 반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엔 오픈AI가 구글 제미나이 3의 선전에 위기감을 느껴, 전사적으로 비상 근무에 들어가는 ‘코드 레드’를 발동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주식 시장 편중 심해지고, 탄소중립 관심 가라앉아챗GPT 출시 후 3년, 오픈AI가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수혜를 본 기업은 따로 있다. 엔비디아다. 챗GPT가 불러온 AI 개발 열풍에 힘입어 AI 학습에 쓰이는 엔비디아 GPU 수요는 끝없이 폭증했다. 챗GPT 출시 후 엔비디아 주가는 979% 상승했고, 연 매출은 270억달러 수준에서 2000억달러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골드 러시 때엔 곡괭이와 청바지 기업이 돈을 번다는 지혜가 AI 러시 때도 현실화된 셈이다. 최근 3년 간 S&P 500 지수 역시 AI 기술 투자에 힘입어 64% 상승했고,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7개 남짓 AI 핵심 기업들이 S&P 500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서 35%로 늘었다. AI 열풍은 빅테크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도 바꿨다. 빅테크 기업들은 업무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보다 줄이거나 없애는 탄소가 더 많은 ‘넷 제로’를 구현하겠다고 앞다퉈 약속했으나, 챗GPT 등장 이후 이 같은 말은 쑥 들어갔다. 탄소 배출이 많은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축을 확대하고, 에너지를 대기 위해 원자력 발전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2025.12.06 14:00

4분 소요
흔들리지 않는 ‘본질의 힘’…배세와 BSWay 대표가 매년 다시 읽는 책 [CEO의 서재]

“단순한 경영서가 아니다. ‘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배세와 BSWay 대표이사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을 추천하며 “사업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고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잡아주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배 대표에 따르면 사업은 결국 ‘본질을 파악하고 비즈니스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배 대표는 “트렌드나 유행은 금방 지나가지만, 사업의 구조를 제대로 짜놓은 사람은 위기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며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트렌드를 좇기보다는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적자본론은 일본의 ‘츠타야서점’을 기획해 성공시킨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마스다 무네아키의 경영 철학이 오롯이 담긴 책이다. 1983년 서적·디지털비디오(DVD) 대여업으로 시작한 츠타야는 아트·여행·식음료(F&B)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의 표준이 됐다.지적자본론에는 비디오 가게였던 츠타야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기까지 본질을 간파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고의 힘이 담겼다고 배 대표는 설명했다.그는 “시대가 변화하며 비디오 가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무네아키 대표는 콘텐츠의 힘에 주목해 츠타야를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큐레이션하는 공간으로 재설계했다”고 전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로 배 대표는 ‘모든 사람은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무네아키 대표의 말을 꼽았다.배 대표는 무네아키 대표를 경영자로서 존경하며 그와 만나는 순간을 늘 상상했다. 무네아키 대표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직접 그의 경영 철학과 츠타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은 배 대표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다.그는 “사업의 근본을 다시 디자인한 지속 가능한 경영 사례로 츠타야를 많은 사업가에게 소개했다”면서 “지적자본론은 프리랜서와 1인 기업가 등에게 자신의 철학으로 사업을 설계하는 법을 알려주는 살아있는 매뉴얼”이라고 언급했다.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고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필요한 건 자본이 아니라 사고력, 즉 ‘지적 자본’이라고 배 대표는 강조했다. 그에게 지적자본론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며, 매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책이다.

2025.12.06 13:00

2분 소요
韓 커피 산업 구조적 전환 확인한 2025 서울카페쇼 [심재범의 커피이야기]

전문가 칼럼

지난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제24회 서울카페쇼'(카페쇼)가 열렸다. 지난 2002년 1회를 시작해 ▲베트남 ▲중국 ▲태국 등으로 확장해 온 카페쇼는 올해 서울 행사에서 36개국 681개 업체, 3891개 브랜드가 참여하며 ‘아시아 최대 커피 전시회’로 성장했다. 관람객 수는 지난해 달성한 15만명을 넘어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생두 ▲장비 ▲로스팅 ▲음료 ▲디저트 ▲프랜차이즈 등 커피 산업 전반을 다루는 업체가 한자리에 모여 시장의 흐름을 확인했다. 전시 기간 ▲스페셜티 시장의 확대 ▲저가 시장의 압박 ▲자동화 기술의 확산 ▲해외 브랜드의 적극적인 참여 ▲창업 생태계의 변화 등의 새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국 커피 산업이 단순 성장기를 지나 새로운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5년 카페쇼를 통해 나타난 한국 커피 산업의 트렌드는 다음과 같다. 프리미엄 vs 저가 중심 ‘양극화’ 뚜렷최근 커피 산업의 특징은 고품질과 저비용이 뚜렷하게 갈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후반부터 아라비카 생두 가격이 급등하며 ▲공급 불안정 ▲기후 문제 ▲투기적 매입이 겹쳐 원가 부담이 빠르게 커졌다. 저가 커피 브랜드와 프랜차이즈는 대량 매입과 낮은 가격 구조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심각했고, 원가를 낮추기 위한 방식이 절실했다. 스페셜티 커피 업체는 ▲파나마 게이샤 ▲COE(Cup of Excellence) ▲나노 로트 등 고가 생두를 적극적으로 선보이며 차별화 전략을 강화했다. 파나마 스페셜티커피 협회는 이번 카페쇼에서 세계 최고가 게이샤 커피를 무료로 시음해 관람객의 관심을 모았다. 중간 가격대 브랜드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산업 전반적으로 ‘프리미엄과 저가’ 중심의 양극화가 더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소비자의 선택 기준 역시 분명해지고 있으며, 브랜드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이다.이번 카페쇼는 자동화 기술이 한국 커피 산업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추출 과정을 자동화하는 기계 ▲로스팅 프로파일을 자동으로 보정하는 시스템 ▲인공지능(AI) 기반 기능을 갖춘 장비가 대거 등장했다. 한국의 스트롱홀드와 리오나이는 AI 기반 로스팅 기능을 선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세계 챔피언의 뉴클리어스는 계측 장비와 빅데이터 기반 솔루션으로 바리스타와 홈 카페 사용자에게 인기를 얻었다. ▲WMF ▲에버시스 ▲프랑케 등의 전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은 ▲라마르조코 ▲시네소 ▲슬레이어 등 기존 수동 머신 중심의 구조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최저 임금 상승 ▲인력난 ▲유지비 증가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자동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점주와 바리스타가 품질과 효율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 상황에서 자동화 장비는 더욱 빠르게 확산할 전망이다. 해외 참여 늘고…韓 스페셜티 업체 활약올해 카페쇼는 해외 로스터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덴마크, 뉴욕 기반의 라카브라와 미국 스페셜티 커피를 상징하는 오닉스는 대형 부스를 운영했다. 호주의 ▲프라우드메리 ▲디기두 ▲아처 ▲필로커피와 중국의 캡틴조지, 한국과 인연이 깊은 홈바디 유니언 같은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도 독립 부스로 참가해 방문객이 몰렸다. 해외 로스터가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이유는 한국 소비자의 높은 취향 수준과 한국 시장 자체가 글로벌 테스트 베드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부 해외 업체가 한국 시장을 가볍게 본 사례와 달리 올해는 한국 소비자에 대한 존중과 철저한 준비가 돋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시장을 통해 브랜드의 경쟁력을 검증하려는 움직임도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다.카페쇼는 스페셜티 업체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커피리브레는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공전미래’라는 제목의 서적을 선보이며 다양한 커피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모모스 커피는 하이엔드 스페셜티 라인을 공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나무사이로는 인스턴트 스페셜티 제품으로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커피 앨리에서는 ▲매뉴팩트 ▲기미사 ▲로쾃 ▲스테레오스코프 ▲고로 ▲파이오니어 ▲베르크 ▲칼라스 ▲프로토콜 등 신진 로스터가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 스페셜티 커피 시장의 다양성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소비자는 특정 브랜드보다는 개별 로스터의 개성과 스토리를 찾기 시작했고, 시장의 방향성을 바꾸는 중요한 움직임이 되고 있다.‘취향 플랫폼’ 된 카페쇼…유튜버·홈바리스타 부스 인기카페쇼는 기존의 대형 기계 중심 박람회에서 벗어나 관람객이 자신의 취향을 직접 확인하고 넓히는 ‘취향 플랫폼’으로 변하는 중이다. 이번 카페쇼에서는 유튜브 기반 커피 채널과 홈바리스타 브랜드의 부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 커피 유튜버 안스타의 언스페셜티 부스는 D홀에서 가장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블랙로드, 오멜라스 같은 유튜브 기반 로스터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전통적인 대형 장비업체의 활약은 줄었지만, 국산 머신 비다스가 바리스타 김사홍과 선보인 협업 시연은 모든 회차가 마감됐다. 이제 관람객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확인하고 확장하기 위해 카페쇼를 찾는다. 커피는 기능성 음료를 넘어 정체성을 표현하는 소비재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런 변화는 앞으로의 산업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2020년대 초반까지 강세였던 창업 컨설팅과 프랜차이즈 부스는 최근 카페쇼에서 크게 존재감을 잃고 있다. ▲생두 가격 상승 ▲인건비 부담 ▲임대료 상승 등이 겹치면서 카페 창업은 더 이상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표준화된 운영 방식을 내세워온 기존 프랜차이즈 모델도 고품질 커피 흐름과 맞지 않게 됐다. 창업 인큐베이팅 모델 역시 경쟁력을 잃어가는 중이다. 커피 산업은 소상공인 중심 구조에서 브랜드·기술 기반의 전문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번 카페쇼는 한국 커피 산업의 저변 확대와 전문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앞으로의 시장은 더욱 정교한 운영 방식과 차별화된 콘셉트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창업 생태계도 이에 맞춰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2025.12.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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