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서 이겨도 끝 아니다…기업에 새겨진 ‘공정위 주홍글씨’
- [공정위는 공정한가]⑤
소송비용·평판 훼손·놓친 사업 기회는 보상 대상서 제외
공정위 대책은 ‘승소율 제고’…패소 사건 복기·공개 장치 필요
[이코노미스트 박세진 기자] “공정위가 걸면 걸린다.”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시장점유율이 높거나 거래 구조가 복잡한 기업일수록 경쟁 제한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불공정거래 등 다양한 혐의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은 과징금만이 아니다. 조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평판과 사업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제재를 의결하면 기업명과 위반 내용, 과징금 규모를 공개한다. 언론과 시장의 관심도 이때 집중된다. 반면 이후 법원이 처분을 취소하더라도 그 결과는 최초 제재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과징금은 돌려받을 수 있지만 소송비용과 훼손된 평판, 지연된 사업까지 보상받기는 어렵다.
공정위 처분이 법원에서 최종 취소되면 기업이 낸 과징금은 환급된다. 이자 성격의 환급가산금도 지급된다. 회계상으로는 원상회복에 가깝지만 기업이 입은 유무형의 손실까지 되돌리는 것은 아니다.
수년간 소송을 벌이는 데 들어간 법률비용과 제재 발표로 훼손된 기업 이미지, 흔들린 사업계획은 보상받기 불가능하다.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동안 미뤄진 투자와 신규 사업의 기회비용도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비가맹 택시의 영업 기회를 제한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271억원을 부과했다. 이는 같은 해 영업이익 387억원의 약 70%에 해당하는 규모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과징금 납부 명령을 모두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가맹 택시와 비가맹 택시는 거래조건과 거래 내용이 달라 동일한 비교 대상이라고 보기 어렵고, 경쟁 제한을 입증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공정위가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처분이 최종 취소된 것은 아니어서 법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재가 발표된 시점부터 따지면 카카오모빌리티는 3년 넘게 위법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소송이 길어질수록 부담도 커진다. 기업은 최종 판결까지 소송 결과가 재무와 사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고 법률 대응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도 계속 투입해야 한다. 업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조사나 제재 대상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서 '주홍글씨'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투자 유치와 대외 신뢰가 중요한 기술·플랫폼 기업은 규제 불확실성에 더욱 취약하다. 조사와 소송이 이어지는 동안 신규 사업과 서비스 개편, 기술 개발 등 주요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 있다. 법원에서 처분이 뒤집혀도 이미 놓친 사업의 ‘골든타임’은 되돌릴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나 제재를 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투자 유치와 사업 제휴처럼 신뢰가 중요한 활동에도 제약이 생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술 기업은 시장 변화에 맞춰 신규 서비스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며 “핵심 사업을 둘러싼 조사와 소송이 수년간 이어지면 경영진의 의사결정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처분 뒤집혔는데 ‘복기’는 보이지 않아
더 큰 문제는 공정위 처분이 법원에서 취소된 뒤의 대응이다. 과징금과 환급가산금을 돌려주는 절차는 마련돼 있지만, 처분이 뒤집힌 원인과 이후 개선 조치를 외부에 설명하는 장치는 충분하지 않다.
공정위는 패소 사건을 내부적으로 복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패소 원인에 대한 자체 분석 결과는 공개하지 않는다. 처분 취소에 따른 기업의 명예 회복도 판결문 공개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기업은 수년간 소송 비용과 평판 훼손을 감수하지만, 공정위가 패소 사건에서 어떤 문제를 확인했고 조사·심의 기준을 어떻게 보완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환급가산금 역시 국고에서 지급되는 만큼, 취소된 처분에서 발생한 비용을 결국 국민이 부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검찰은 무죄 판결이 확정되면 수사와 기소, 공소 유지 과정의 적정성을 점검하는 ‘무죄평정’ 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공정위에는 패소 원인을 정형화해 점검하고, 그 결과와 개선책을 외부에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뚜렷하지 않다.
공정위는 과징금 환급 최소화를 외부의 반복 지적사항으로 보고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조사·심의·소송 전 단계에 걸쳐 중요 사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소송대리인 풀도 강화할 방침이다.
다만 이번 대책은 승소율을 높이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취소된 처분의 원인을 사건별로 공개하거나 기업이 입은 피해를 회복하는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소송 대응을 강화하는 것과 별개로, 조사·심의 과정의 문제를 투명하게 되짚고 재발 방지책을 제시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패소시 사실관계 판단과 증거 수집, 경제 분석, 법 적용 등 단계별로 패소 원인을 구분해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반복되는 패소 유형과 개선 결과를 일정 범위에서 공개하면 제재의 정확성과 기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재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뒤 법원에서 처분이 뒤집히면 공정위의 위상과 신뢰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조사와 처분에 더욱 신중해야 하며, 기업의 발목을 잡는 기관으로 비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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