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사상 첫 여성 맞대결과 31개 도시가 던지는 질문[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선거와 도시]⑥
1400만의 일상이 쌓이는 곳, 정쟁의 소음을 뚫고 공약을 봐야 할 이유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2026년 6월, 경기도에서 처음 보는 장면이 펼쳐진다. 민주당 추미애, 국민의힘 양향자. 거대 양당이 나란히 여성 후보를 내세웠다. 여기에 조응천(개혁신당) 후보 등이 가세하며 다자 구도가 됐지만, 같은 선거판에서 두 거대 정당이 동시에 여성을 선택한 것 자체가 경기도 선거 역사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둘 중 한 명이 당선되면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 선거는 비단 누가 최초의 타이틀을 가져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1400만 경기도민의 삶의 공간, 즉 31개 시군이라는 서로 다른 도시들을 앞으로 4년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여성 대 여성, 지워지는 것들
우리보다 먼저 여성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던 나라들의 경험에서 공통된 역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여성 후보는 남성 후보보다 가혹한 검증의 잣대에 놓인다는 것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이중 검증’이라 부른다. 특히 여성 후보가 남성 후보보다 ‘호감도’와 ‘자격’사이에서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받는다. 강하게 나서면 ‘감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부드럽게 나서면 ‘리더십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감을 드러내면 ‘독선적’이 되고, 신중하게 말하면 ‘우유부단’해진다. 남성 후보가 같은 행동을 해도 ‘결단력 있는 리더’나 ‘사려깊은 판단’으로 읽히는 것과 정반대다. 이 구조 안에서 여성 후보들은 정책보다 이미지 관리에 에너지를 더 쏟게 된다. 미국에서 25년간 여성 후보의 선거 패턴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비당파 싱크탱크 ‘바바라 리 재단’은 이 역설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재단이 발표한 연구 ‘Shared Hurdles(2022)’는 여성 대 여성 선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첫 보고서로, 결론은 명확했다. 여성끼리 맞붙어도 이중 검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성별이 더 이상 차별 변수가 되지 않는 순간, 정작 여성 의제는 선거 논쟁에서 지워진다는 것이다.
이번 경기도 선거도 그 역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돌봄 인프라, 경력단절 방지, 여성 안전 등 경기도 여성 도민의 삶과 직결된 공약이 이번 선거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지를 보라. ‘최초의 여성 도지사’를 향한 역사적 경쟁이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정책 논쟁을 지워버리고 있다.
공약이 실종된 선거, 중앙 정치가 경기도를 덮다
지금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더 깊이 우려스러운 것은 공약과 정책 논쟁 자체가 중앙 정치의 소음에 완전히 묻혀버렸다는 사실이다. 공소취소 추진을 둘러싼 논란, 구 정권 심판론과 현 정권 견제론의 충돌이 선거판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어떤 후보가 경기도민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바꿀 공약을 내놓는가가 아니라, 중앙 이슈에 어떤 입장을 가졌느냐가 후보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두 거대 정당의 후보 모두 경기도지사 선거를 중앙 정권에 대한 심판과 지지의 대리전으로 소비하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경기도는 인구 1400만, 국내총생산의 25%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광역자치단체이다. 도지사의 판단 하나가 수원의 주택 공급 속도를 바꾸고, 화성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좌우하며, 연천의 버스 노선을 결정한다. 그 무게가 중앙 정쟁의 승패보다 훨씬 더 도민의 일상에 직접 닿아 있다.
경기도는 단일 도시가 아니다. 인구 120만의 수원시와 인구 4만의 연천군이 같은 행정구역 안에 공존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이 밀집한 화성·용인과, 접경 규제로 수십 년째 개발이 가로막힌 파주·포천이 같은 도지사의 도정을 받는다. GTX가 지나가는 고양·동탄과, 버스 한 대 놓치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양평·가평이 같은 예산 배분 테이블에 앉는다. 경기도지사는 31개 도시를 동시에 운영하는 도시 포트폴리오의 설계자다.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누가 31개의 다른 도시 문법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두 후보의 도시 비전은 출발점부터 결이 다르다. 추미애 후보는 ‘균형’을 축으로 도시 문제를 접근한다. 공공주택 임기 내 14만 8000호 공급, 어린이·청소년 무상교통, 경기북부 방산클러스터 구축, 규제혁신위원회 상설화 등 복지와 균형발전을 투트랙으로 묶었다. 공약의 구조는 ‘공공 주도 설계’다. 주거와 교통을 도가 직접 공급하고 조정하겠다는 방향이며, 6선 국회의원과 법무장관을 거친 행정·입법 경험이 이 설계의 근거다.
양향자 후보는 ‘산업 재편’을 축으로 도시 문제를 접근한다. 경기도를 권역별로 나눠 남부는 반도체 중심 첨단산업, 동부는 문화·예술, 북부는 안보·R&D 거점으로 특화하는 ‘경기 인더스트리 4.0’을 제안했다. ‘실리콘 하이웨이’라는 권역 직결 교통망은 서울 중심으로 짜인 현재의 교통 구조를 산업 동선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 최초 고졸 여성 임원이라는 이력이 이 접근의 배경이다. 한 사람은 ‘공공이 도시를 설계하고 균형을 맞춘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산업이 도시를 만들고 시장이 균형을 잡는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도의 현실은 이 두 방향 모두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공약이 역사를 완성한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중앙 정치의 대리전이 되어버린 지금, 유권자에게 공약을 보라고 말하는 것이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경기도지사는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나 적이기 이전에, 1400만 명이 매일 출근하고 아이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삶의 터전을 운영하는 책임자다. 그 책임의 무게는 중앙 정쟁의 승패와 무관하게 4년 내내 도민의 일상에 쌓인다.
경기도 무주택 서민들은 몇년을 기다려야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지, 고양의 청년이 서울 나가지 않고 경기도 안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연천의 아이들이 통학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이 질문들에 구체적인 숫자와 작동 가능한 방법이 담긴 공약이 있는가. 최초의 여성 광역단체장 탄생이라는 역사적 가능성도, 중앙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정치적 열망도, 결국 이 질문들 앞에서 무게를 증명해야 한다.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의 투표장은 그 설득력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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