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볼테르는 “사람의 됨됨이는 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판단하라”고 했다. 300년 전 이 말이 2026년 한국 대학 입시 열기에 반영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올해 주요 대학 수시모집에서 철학과가 일제히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대 일반전형에서 철학과(15.56대 1)는 인문대 1위를 차지했고, 고려대 계열적합전형에서는 철학과(22.33대 1)가 의대 다음으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중앙대 논술전형은 155.3대 1, 경희대 논술전형은 151.43대 1, 한양대 교과전형은 21.00대 1에 달했다. 한두 대학의 이변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AI 관련 학과 지원자가 전년 대비 16% 늘어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KAIST는 AI 철학 연구센터를 개소했고, 교육부는 인문사회 학술연구 예산을 4489억원으로 확대했다. 기술의 파도가 높아질수록 닻을 내릴 곳을 찾는 본능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이 역설은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AI 학과와 철학과 선호가 동시에 치솟는 현상은 시대가 ‘답을 만드는 능력’과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는 기술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사유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의 교차점에 브랜드의 미래가 있다.이제 AI는 도구 넘는 운영체계맥킨지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 10곳 중 9곳이 AI를 비즈니스에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1년 전 55%에서 급등한 수치다. AI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 도구를 넘어 조직 운영의 기반이 되고 있다. 페덱스(FedEx)는 AI 로봇을 활용해 시간당 1000개의 화물을 90개 목적지로 분류하고, 아메리칸항공은 환승 실패 가능성을 AI가 사전에 감지해 고객이 문의하기 전에 대체 항공편을 확보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거대 기술기업(빅테크)이다.그러나 그 물결 위에서 어디로 항해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개별 기업과 개인의 몫이다. 여기서 철학과 선호 현상이 주는 통찰이 드러난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가진 편이 질문할 수 없는 답을 가진 것보다 낫다”고 했다. AI가 더 빠르고 정확한 답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진짜 경쟁력은 ‘무엇을 물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회 전체가 답의 효율과 질문의 깊이를 동시에 갈구하고 있다.
브랜드의 관점에서 보면 이 구도는 더욱 선명해진다. AI는 고객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개인화된 경험을 실시간으로 설계한다. ‘어떻게(How) 팔 것인가’는 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왜(Why)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다. 데이터는 고객의 행동을 읽어주지만, 그 너머의 욕망과 불안을 해석하는 것은 브랜드의 철학이다.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문학과 결합해야 가슴을 뛰게 하는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파타고니아가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를 내건 것도 효율의 논리가 아니라 철학의 논리였다.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기술적 역량 위에 자기만의 질문을 올렸다는 데 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고객에게 진짜로 약속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AI가 범용화되는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남는다.철학과와 AI 학과가 동시에 인기를 끄는 현상은 사회의 거시적 변화가 이미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의 파도는 빅테크가 만들지만, 그 위에서 방향을 잡는 것은 철학적 사유다. 기업에게는 브랜드 철학이고, 개인에게는 질문하는 능력이다.AI가 모든 것을 바꾸는 시대다. 더 빠르고 정확한 답은 이미 기계가 만들어내고 있다. 사람과 브랜드에게 남은 과제는 더 좋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성찰을 멈추는 순간 기술의 진화는 발전이 아니라 표류가 된다. AI가 바꾸지 못하는 것, 그것은 질문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며 질문하는 존재로서의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