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벌써부터 계좌 수백억, 세제 당근책 통할까”…RIA, 환율·수급 방어용 정책 실험
- [서학개미 유턴하나]①
“계좌는 늘었지만 자금은 글쎄”…RIA 초기 흥행 vs 실효성 논란
달러 선호·미국 증시 쏠림 지속…서학개미 자금 흐름은 ‘견고’
제도 시행 직후 국내 주요 증권사에서는 자금과 계좌가 동시에 유입되는 흐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국내 상위 10개 증권사에 따르면 RIA 계좌는 총 5만7000여개에 달한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1만개가 넘는 계좌가 개설됐다. 잔고액도 증가세다. 삼성증권은 출시 나흘 만에 RIA 잔고 300억원을 돌파했고, 계좌 수는 4000개를 넘어섰다. 계좌당 평균 잔고는 약 750만원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도 출시 사흘 만에 가입자 1만명을 넘어서며 개인 투자자 유입이 빠르게 확대됐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누적 입고금액이 수백억원 규모로 늘어나는 등 초기 자금 유입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도 계좌 개설 증가세에 가세하며 전반적으로 고객 유치 경쟁이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업계에서는 “계좌와 자금이 단기간에 동시 유입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정책 기대감
이 시장에 선반영된 결과로 평가하고 있다.
RIA는 해외 주식을 매도한 뒤 해당 자금을 원화 자산이나 국내 주식 등에 재투자하고 이를 일정 기간 유지할 경우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구조다.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부담을 일정 부분 완화해 국내 시장으로의 자금 회귀를 유도하는 ‘당근책’이다. 단순한 절세 계좌를 넘어, 투자 자금의 방향을 바꾸려는 정책적 의도가 명확히 반영된 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가 외환시장과 증시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상황에서 이를 제도적으로 조정하려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상징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초기 흥행과 별개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몇 년간 개인 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구조적으로 확대돼 왔으며, 단순한 세제 요인보다 글로벌 자산 선호와 수익률 기대가 자금 흐름을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증시의 경우 빅테크 중심의 성장 스토리와 높은 유동성, 글로벌 투자 접근성 등이 결합되며 ‘기본 투자처’로 자리 잡은 상태다. 반면 국내 증시는 성장성·주주환원·지배구조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으며 투자 매력에서 밀리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환율 변수도 중요하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는 달러 자산 선호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환차익까지 고려한 해외 투자 수익률이 국내 투자 대비 우위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에서 단순한 세제 인센티브만으로 자금의 방향성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시장에서는 “세금을 줄여준다고 해서 수익률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RIA의 구조 자체도 투자자에게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정 기간 자금을 유지해야 하는 조건은 사실상 ‘락업’(보호예수)으로 인식될 수 있어 변동성이 높은 장세에서는 유동성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처럼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확대된 국면에서는 투자자들이 자금 이동의 유연성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 경우 절세 혜택보다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세금보다 수익률”…국장 ‘매력 회복’ 없인 유턴 어려워
정책의 배경에는 보다 구조적인 고민이 깔려 있다. 해외 투자 확대는 달러 수요를 자극하며 원화 약세 압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외국인 자금 이탈과 증시 변동성 확대를 동시에 유발하는 경로를 형성한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개인 자금까지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국내 증시는 수급 기반 자체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RIA를 통해 개인 자금의 일부라도 국내에 묶어두려는 이유다. 일종의 ‘수급 방어 장치’이자 ‘환율 완충 장치’로 기능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시장에서는 계좌 유치와 자금 이동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초기 계좌 개설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정책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지만, 실제로 자금이 국내 시장에 장기적으로 안착할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단기적인 이벤트 효과 이후 자금 유입이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는 결국 세금이 아니라 수익률을 보고 움직인다”며 “환율 안정과 함께 국내 시장의 성장 스토리, 주주환원 정책 등이 동시에 개선되지 않는다면 RIA만으로 자금 흐름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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