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다작 시대 종언’... 넥슨이 쏘아 올린 ‘선택과 집중’ 신호탄
- 실리주의로 무장한 게임 맏형, ‘양의 시대’ 접고 ‘슈퍼 IP’로 승부수
텐센트에 중국 ‘던파 모바일’ 운영 맡긴 넥슨의 결단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대한민국 게임업계 맏형 넥슨이 수년간 유지해 온 ‘다작(多作) 경영’의 마침표를 찍고, 철저한 실리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선회한다. 최근 열린 캐피털 마켓 브리핑(CMB)에서 선언된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성공 가능성이 검증된 프로젝트에 화력을 집중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 첫 행보로 핵심 지식재산권(IP)인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서비스 운영권을 현지 파트너인 텐센트에 과감히 이관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옛말, 이제는 기획부터 흥행 가능성 따진다
지난 수년간 넥슨은 이른바 ‘빅앤리틀’(Big & Little) 기조 아래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대작 IP 개발과 동시에 참신한 아이디어 중심의 소규모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며 시장의 반응을 살피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캐피털 마켓 브리핑에서 패트릭 쇠더룬드 넥슨 회장이 던진 메시지는 단호했다. 이제는 ‘다작의 시대’가 저물고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성장을 가속화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쇠더룬드 회장은 이번 브리핑을 통해 모든 게임 포트폴리오에 대한 전면적인 재편을 예고했다. 핵심은 ‘명확한 사업성 검토’다. 과거에는 일단 프로젝트를 론칭한 뒤 성과가 미진하면 빠르게 정리하는 ‘패스트 페일’(Fast Fail) 전략을 취했으나 앞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성공 가능성을 엄격히 따져 검증된 프로젝트에만 회사의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붓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글로벌 게임 시장의 경쟁 심화와 개발 비용의 급격한 상승이라는 대외적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다수의 프로젝트에 힘을 분산하기보다 확실한 수익원이 될 수 있는 ‘슈퍼 IP’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넥슨의 이러한 전략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의 중국 서비스 운영 구조 개편이다. 넥슨은 핵심 자회사 네오플이 맡아오던 던파 모바일의 중국 현지 라이브 서비스 운영권을 퍼블리셔인 텐센트로 전격 이관하기로 결정했다.
그간 던파 모바일의 중국 서비스는 텐센트가 마케팅과 현지화를 담당하고, 한국의 네오플 본사가 실질적인 라이브 서비스 운영과 이용자 관리를 직접 수행하는 이원화 체제였다. 개발사가 운영까지 세세하게 챙기다 보니 현지 시장의 빠른 피드백 대응과 대규모 업데이트 기획 사이에서 역량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결정으로 네오플은 앞으로 신규 콘텐츠 기획 및 고도화된 시스템 개발 등 ‘개발 본연의 업무’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된다. 반면, 중국 현지 사정에 정통한 텐센트가 운영과 유저 관리를 전담함으로써 서비스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이는 넥슨이 강조한 ‘선택과 집중’의 실천적 모델로, 개발사는 제품의 완성도에 집중하고 퍼블리셔는 시장 최적화에 집중하는 구조적 효율화를 꾀한 것이다.
과거 넥슨의 개발 문화는 ‘실패해도 괜찮으니 일단 만들어보자’는 도전 정신에 기반해 있었다. 다수의 게임을 동시다발적으로 개발하며 시장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인적 자원의 파편화와 관리 비용의 증대라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 넥슨은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사업성을 정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체질을 바꾼다.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전 세계적인 흥행 가능성 ▲장기적인 서비스 지속성 ▲수익 모델의 안정성까지 입체적으로 분석해 ‘될 성부른 떡잎’만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 변화는 넥슨이 보유한 기존 메가 IP(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마비노기 등)의 확장과 신규 대형 프로젝트에 더욱 힘이 실릴 것임을 시사한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IP의 수명을 연장하고 이를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작업이 최우선 순위에 놓일 전망이다.
실제로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이번 CMB에서 메이플스토리의 성공 공식을 다른 핵심 프랜차이즈에 본격적으로 이식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메이플스토리의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타이틀이 아닌, 여러 갈래의 전략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분석하며 ▲코어 유저의 심화된 PC 메이플스토리 경험 ▲UGC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를 통한 클래식 경험의 확장 ▲‘메이플 키우기’를 통한 모바일 환경에서의 캐주얼한 경험 ▲’메이플스토리 유니버스’를 통한 새로운 개념의 실험 등을 사례로 들어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의 성과를 평했다.
여기에 각 글로벌 시장의 문화와 취향에 맞춰 콘텐츠를 제공하고, 유저 간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초현지화’ 전략이 더해져, 프랜차이즈 전체의 성장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던전앤파이터 프랜차이즈의 재도약 전략도 소개했다. 메이플스토리 프랜차이즈의 성공을 잇는 ‘던파 키우기’를 연내 선보이고 던전앤파이터의 황금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던전앤파이터 클래식’을 2027년 출시할 계획이다. 나아가 ‘퍼스트 버서커: 카잔’의 성공으로 확인한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던전앤파이터: 아라드’, ‘프로젝트 오버킬’ 등 매력적인 신작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부연했다.
게임 산업 전반에 던지는 ‘선택과 집중’ 화두
넥슨의 이번 행보는 국내외 게임 업계 전반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게임 시장이 고자본·고퀄리티 경쟁 위주로 재편되면서 더 이상 ‘운에 맡기는 다작’으로는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넥슨의 이번 선언을 “성숙기에 접어든 게임 산업에서 거대 기업이 취해야 할 필연적인 합리화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는 “넥슨처럼 자금력이 풍부한 기업마저 선택과 집중을 선언했다는 것은 이제 게임 개발이 단순히 ‘재미’를 넘어선 고도의 ‘비즈니스 엔지니어링’ 단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결국 넥슨의 목표는 하나로 귀결된다. 낭비되는 리소스를 최소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확보된 동력을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블록버스터’급 성과로 치환하는 것이다. 넥슨이 쏘아 올린 이 신호탄이 국내 게임 산업의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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