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스타벅스’와 ‘에릭 슈밋’에게 없었던 단 하나 [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 AI 시대의 가장 인간적인 경쟁력
공감은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그 앞에 선 연사가 하필 에릭 슈밋이었다. 구글을 십 년간 이끌고 '인공지능(AI) 시대의 설계자'로 불리는 일흔한 살의 거부(巨富). 그는 청년 시절을 회고하다 인공지능으로 화제를 옮겼다. 일자리가 증발하고 기후가 무너진다는 너희의 두려움은 '합리적'이지만, 그 흐름에 올라타 미래를 '함께 빚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고.
객석이 술렁였다. 야유가 터졌다. 슈밋은 멈칫하며 한발 물러섰다. "여러분이 무엇을 느끼는지 압니다. 두려움이 있다는 걸" 정확한 진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것을 빚는 건 여러분 차례입니다" 야유는 바로 그 대목에서 가장 거세졌다.
사흘 뒤, 서울. 스타벅스 코리아가 마케팅 판촉행사를 앱에 띄웠다. 5월 18일의 그 이름은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나란히 걸렸다. 광주의 거리를 짓밟던 계엄군의 탱크, 그리고 1987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두 기억이 한 문장 안에서 동시에 깨어났다. 40년이 지나도 그 5월은 많은 이에게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시간이다. 그룹의 회장은 두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고, 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충성 고객이 등을 돌렸고, 영문도 모른 채 매장을 지키던 일선 직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한순간에 부정해야 했다. 급기야는 대통령까지 나서 해당 기업을 비난하며 관련자들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광고문구 하나로 인해 우리나라 마케팅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두 사건은 같은 듯 다르다. 스타벅스는 아예 보지 못했다. 전국민을 고객으로 둔 브랜드가 국민 정서에 정면으로 맞설 이유는 없으니, 고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서늘하다. 악의 한 점 없이도 일이 이렇게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오늘의 마케팅 환경이 부른 사고에 가깝다. 카피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몇 초 만에 수십 개가 쏟아지고, 콘텐츠는 더 빨리 더 많이 세상에 나간다. 문제의 그 문구도 사람이 처음부터 쓴 것이 아니라 AI가 뽑은 여러 안 가운데 하나였다. 검토할 양은 폭증하는데, 그 말이 누구의 어떤 기억을 건드릴지 헤아릴 시간은 줄어든다. 기획부터 결재까지 네다섯 단계를 거쳤지만, 그 시스템과 피드백 루프 어디에도 '그 말을 받는 사람'을 대신할 한 사람이 없었다.
슈밋은 반대다. 그는 두려움을 보았고 정확히 입에 올렸다. 다만 곧장 자기 낙관으로 덮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그 두려움을 끝까지 인정하는 순간, 그는 자기 일생의 작품을 부정해야 한다. 'AI 설계자'라는 자리가 그를 묶은 것이다. 화자가 자기 입장에 갇히면, 듣는 사람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과 그 감정을 함께 느끼는 일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장소는 달라도 결론은 하나다. 한쪽은 시스템이, 다른 한쪽은 사람이 '받는 사람'의 자리를 비워뒀다.
왜 똑똑한 조직과 노련한 리더가 이런 실수를 반복할까.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의 니컬러스 에플리 교수가 단서를 준다. 스물다섯 차례의 실험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뜻밖이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오랜 조언은 우리 기대만큼 정확하지 않다는 것. 남의 신발을 신은 척 상상하는 순간, 사람은 결국 자기 머릿속을 들여다볼 뿐이기 때문이다. 정확도를 높이는 길은 따로 있었다. 짐작하는 대신, 직접 묻고 듣는 것이다.
함정은 자신감이다. 자기 짐작을 믿을수록 굳이 묻지 않는데, 그 자신감은 정확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지위가 높고 경험이 많을수록 덫은 깊어진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곧 세상이 보는 것이라 여기고, 시간에 쫓길수록 더 그렇게 판단한다. 무대 위의 화자와 결재선 맨 위의 경영자가 가장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감이 빠진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았다면, 공감이 자리를 지킬 때를 볼 차례다. 2020년 5월, 팬데믹으로 매출의 80%가 사라진 에어비앤비의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직원 넷 중 하나, 1900명을 내보내야 했다. 슈밋의 청중이 두려워하던 바로 그 일을 그는 실제로 통보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3000 단어가 넘는 그의 편지는 회사가 어쩌다 여기에 이르렀는지 숨김없이 설명했고, 결정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으며, 넉넉한 퇴직금과 1년 치 건강보험을 약속했다. 무엇보다 떠나는 이들이 새 일자리를 찾도록, 채용 담당자들이 열람할 '인재 명단'까지 만들었다. 해고된 직원들이 도리어 회사를 '가족'이라 불렀다. 똑같이 일자리를 말했는데, 한쪽은 야유를, 다른 한쪽은 감사를 받았다. 메시지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먼저 헤아렸느냐의 차이였다. 바로 공감능력이다.
다행히 공감은 타고나는 감수성이 아니라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공감을 '성공의 선행지표'라 부르며 개인의 천성이 아닌 조직의 규칙으로 옮겨 놓은 것도 그래서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메시지를 내보내기 전, 그 방 안에 받는 사람을 대신할 한 사람을 일부러 앉히는 것이다. "이 말이 누구를 다치게 할 수 있는가"를 묻는 반대 역할을 정해 두고, 표적이 될 사람들에게 실제로 한번 들려본다. 결재 단계를 늘리라는 말이 아니다. 탱크데이의 결재선은 이미 다섯 단계였다. 단계마다 빠져 있던 건 받는 사람의 의자 하나였다.
두 사건이 가리키는 곳은 결국 하나다. 수용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는 공감의 부재. 사고를 키운 건 AI도, 길어진 결재선도 아니다. 그 속도와 규모를 사람의 공감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답도 두 겹이다. 공감을 시스템에 박아 넣는 동시에, 사람 안에 길러야 한다. 그리고 그 부재가 가장 위험해지는 자리가 바로 무대 위, 결재선 맨 위, 마이크 앞이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자기 말이 곧 모두의 생각이라 믿기 쉽고, 그래서 듣는 사람의 자리를 가장 먼저 잊는다. 공감은 마케팅의 기술이기 이전에, 설득이라는 행위 전부의 토대다.
브랜드가 세상에 내보내는 모든 메시지에는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이 있다. 실패는 대개 보내는 쪽이 받는 쪽의 자리에 한 번도 앉아 보지 않을 때 일어난다. 다음 캠페인을, 다음 사과문을, 다음 축사를 내놓기 전에 던질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다. 이 자리에,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의 마음은 함께 앉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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