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돈 안되는 ‘N 라인업’...현대차는 왜 ‘고성능’에 집착할까
- 2012년 태동한 'N'...글로벌 경쟁서 고군분투 中
“언젠가 BMW M·벤츠 AMG와 어깨 나란히 할 것”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라는 말로 요약되던 현대차가 요즘은 진지하게 '주행 감성'을 말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고성능 브랜드 N이다. 현대차는 N을 앞세워 전통의 퍼포먼스 강자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우리도 재밌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현대차의 자신감이다.
N의 시작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출발한 N은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단련되며 태동했다. N은 이 두 지역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또 서킷의 시케인(연속된 좌우 급커브 코너·chicane)을 지나가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단순한 직진보다는 '코너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철학을 품는다.
현대차의 고성능 자동차 N은 단순한 브랜드가 아닌, 기술과 브랜드 정체성을 함께 실은 프로젝트였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과감한 인사를 단행했다. BMW M의 전 수석 엔지니어였던 알버트 비어만을 2015년 영입하며, 단숨에 퍼포먼스 드라이빙의 유전자를 이식했다. 남양연구소와 뉘르부르크링을 오가며 수천 시간의 테스트가 반복됐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첫 양산차 i30 N이 세상에 나왔다.
이후 현대차는 아반떼 N(북미명 엘렌트라 N), i20 N, 코나 N으로 N 라인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현대차가 과연 고성능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심은 여전히 업계와 소비자 사이에 존재했다.

현대차는 실력으로 편견을 이겨냈다. i30 N은 월드 투어링카 컵(WTCR)에서 연속 우승을 거두며 전 세계 레이싱 서킷에서 존재감을 드러냈고,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서의 꾸준한 출전은 실전 데이터 축적의 기반이 됐다.
현대차가 내세운 전략은 단순한 마력 경쟁이 아니다. ‘펀 드라이빙’ ‘일상의 스포츠카’ ‘트랙도 주행 가능한 차’라는 세 가지 원칙이 개발 철학의 핵심이다. 그리고 이 철학은 단지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실전 레이스에서 검증한 데이터를 그대로 양산차에 녹여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실험용 고성능 전동화 플랫폼인 '롤링랩' 시리즈다. 미드십 엔진 레이싱카(RM)에서 시작해 RN22e, N 비전 74까지 이어지는 이 시리즈는 현대차의 미래 고성능차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기술의 전초기지다.
N이 경쟁하는 상대는 BMW M과 벤츠 AMG다. M이 '고회전 자연흡기 엔진'의 전통을, AMG가 '사운드와 직선 가속'의 쾌감을 지향해왔다면, N은 아직은 역사가 짧지만 빠르게 자신만의 색을 구축 중이다.
특히 2024년 말 출시된 아이오닉 5 N은 고성능 전기차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대 출력 641마력, 제로백(0→100km/h)은 3.4초 만에 도달한다. 뉘르부르크링 1만km 테스트도 거쳤다. 여기에 내연기관 느낌을 구현한 가상 변속기 ‘N e-시프트’와 사운드 시스템은 전기차가 너무 조용하다고 느끼는 소비자에게 색다른 경험을 함께 선사한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 N에 이어 두 번째 전동화 N 모델인 아이오닉 6 N을 최근 공개했다. 아이오닉 6 N은 ‘코너링 악동’과 ‘레이스트랙 주행능력’ ‘일상의 스포츠카’라는 N 브랜드 고유의 철학을 계승한 모델이다.
아이오닉 5 N과 동일한 듀얼 모터 AWD 시스템과 84.0kWh 배터리를 탑재했으며, 최대 출력 역시 650마력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제로백은 3.2대, 최고속도는 260km/h에 달한다. 전작인 아이오닉 5 N 보다 제로백을 0.2초 줄임과 동시에 핸들링 및 승차감 모두 끌어올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물론 현대차가 BMW M이나 메르세데스 벤츠 AMG 라인업을 따라잡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고성능 브랜드의 양대산맥인 두 브랜드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해온 ‘스토리텔링’과 ‘고성능 유산’은 하루아침에 모방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다만, 언젠가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N 시리즈를 단순히 성능으로만 평가할 순 없다. 왜 고성능이 필요한지를 이해해야 한다”며 “아파트를 예로 들어 같은 구조, 같은 평수의 아파트라 해도 내부를 대리석으로 마감하면 동네에서 ‘고급 아파트’로 평가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고급’은 프리미엄 브랜드라기보다 디테일에서 오는 감성적 차별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아반떼 N이 있으면 아반떼 전체 라인업이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코나 N도 마찬가지”라며 “꼭 고성능 모델이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진 않아도, N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브랜드 이미지가 올라간다. 일종의 ‘고급 도배지’ 같은 역할인 셈이다. N 라인업은 전체 이미지 상승을 위한 전략적 존재”라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현대차는 언젠가 BMW M이나 메르세데스 AMG 같은 고성능 브랜드의 이미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그에 앞서 차량 자체의 완성도나 포지셔닝에서 조금 더 고급화된 레벨로 올라설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N 시리즈는 주행 퍼포먼스나 운전의 재미 측면에서 굉장히 뛰어난 모델이다. 하지만 이런 하이퍼포먼스의 즐거움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소득 수준도 높고, 구매 여력도 충분하다”며 “이들에게는 단순한 가성비보다 ‘브랜드의 이름값’과 ‘가격대의 품격’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현재의 N 시리즈는 오히려 ‘성능 대비 너무 저렴한 차’로 인식될 수 있다. 퍼포먼스는 충분한데, 가격 급이 낮아 브랜드 가치가 덜 전달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라며 “현대차가 N 브랜드의 위상을 더 끌어올리려면 제네시스 기반의 하이퍼포먼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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