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신탁사 책임준공 판결이 뒤흔든 PF 시장의 미래 [스페셜리스트 뷰]
- 송태원 해광 파트너 변호사
책임준공 보증한 신탁사의 책임 인정 판결
신탁사 역할의 진화...파수꾼에서 최종 보증인으로

이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2022년, 23개 새마을금고로 구성된 대주단은 경기 평택시 물류센터 신축 사업에 PF 대출을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의 수탁자인 신한자산신탁은 시공사가 부도 등으로 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2024년 3월까지 신탁사가 직접 사업을 완공하겠다는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했다. 그러나 약속된 기한 내에 준공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주단은 신탁사를 상대로 대출 원리금 256억원 전액과 연체이자의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의 판단은 단호하다. 재판부는 "책임준공확약서 등에 '책임준공 미이행 시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 전액을 손해 예정액으로 간주하고 배상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고 지적하며, 이는 유효한 '손해배상액의 예정' 조항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대주단은 실제 손해액을 입증할 필요 없이 신탁사는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대출 원리금 전액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탁사 측이 제기한 '자본시장법상 손실보전 금지 위반' 주장 역시 "이는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이지, 수탁재산의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배척했다.
이 판결은 단순한 개별 사건의 결론을 넘어 그동안 부동산 PF 시장의 수면 아래에서 작동해 온 '위험 전가(Risk Transfer)'의 사슬과 그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이번 글은 이 사건 판결을 계기로, 이러한 시장 상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신탁사의 역할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그리고 이 판결이 앞으로 시장에 어떤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PF 생태계를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번 판결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내 부동산 PF 시장의 기형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래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프로젝트 자체의 사업성과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시행사의 영세성과 낮은 자기자본 비율로 인해 시공사의 신용보강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변형된 기업금융'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대주단인 금융기관들은 사업의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전가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 과거에는 그 위험의 최종 종착지가 시공사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시공사 연대보증의 위험성이 부각되자 시장은 새로운 '위험의 최종 인수자'를 필요로 하게 됐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탁사가 등장한다. 특히 신용도가 낮은 중소형 건설사가 참여하는 사업장이 늘면서, 대주단은 시공사의 신용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게 됐고, 이때 신탁사들은 더 높은 수수료 수익을 얻기 위해 시공사의 책임준공을 보증하거나 시공사 부실 시 직접 준공 책임을 지는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 토지신탁'이라는 상품을 통해 그 위험을 떠안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의 위험 인식은 시공사에서 신탁사로 전가되었고, 특히 은행계열 금융지주사에 소속된 신탁사는 더 높은 시장의 신뢰를 받으며 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게 된다.
자산의 파수꾼에서 위험의 최종 보증인으로 신탁사 역할의 진화
이러한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며 신탁사의 역할은 극적으로 진화했다. 본래 신탁사는 사업 부지의 소유권을 이전받아 관리하고(담보신탁), 사업 관련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며(자금관리 대리사무), 시행사의 파산 등으로부터 사업 자산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사업의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기능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소극적이고 관리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그런데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의 등장은 신탁사를 단순한 관리자에서 프로젝트의 물리적 완성을 책임지는 '최종 보증인'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구조에서 신탁사는 전통적인 자산 관리자 역할을 넘어, 공사 지연, 공사비 증액, 시공사 부도 등 건설 현장의 온갖 위험을 직접 인수하게 되었다. 이것은 신탁사에게 높은 수수료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건설 관련 위험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직접 떠안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결국 신탁사는 스스로의 신용을 담보로 대주단의 불안을 잠재우고,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사에게 PF 시장에 참여할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책임준공형 신탁에 내재된 위험 요인
책임준공형 신탁은 신탁사에게 고수익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막대한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 건설 전문성이 부족한 신탁사가 건설 리스크를 직접 관리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신탁사는 금융 및 자산 관리에 특화된 기관으로, 공사 현장의 기술적 문제, 공사비 변동, 시공사의 부실 가능성 등 건설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적인 위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인력, 그리고 통제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이는 문제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고 손실을 확대시킬 수 있는 구조적 취약점으로 작용했다.
둘째, 책임준공 기한 설정의 비현실성도 문제였다. 빠르게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시행사와 대주단의 요구에 따라, 현실적으로 준공이 어려운 촉박한 기한이 설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공사 지연 시 신탁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을 높였고, 결과적으로 대규모 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셋째, 부실 사업장의 증가와 연관된 연쇄적인 위험 전이 가능성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사업성이 악화되는 PF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책임준공 약정을 한 신탁사들은 다수의 사업장에서 동시에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정 사업장의 부실이 다른 사업장의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조는 신탁사 전체의 재무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시장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이번 판결은 법정의 문턱을 넘어 시장 전체에 거대한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당장 신탁사들은 비상에 걸렸다. 현재 계류 중인 유사 소송만 약 13건에 달하며, 7개 주요 신탁사의 책임준공 미이행 사업장 PF 잔액은 1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대주단이 줄소송에 나설 경우, 신탁사들은 대규모 충당금 적립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신탁사들의 신탁계정대(회사 고유계정에서 문제 사업장에 대여하는 자금)는 2024년 12월 기준 7조7016억원으로 1년 만에 3조원 가까이 급증했고, 2024년 4분기에는 14개 신탁사가 총 405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재무적 어려움이 가시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신탁사의 경우 전체 책임준공 사업장 중 5~6%만 부실화되어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편, 책임준공형 신탁은 신용도가 낮은 중소 건설사들이 PF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였으나, 이번 판결로 리스크가 현실화 되면서 신탁사들은 극도로 몸을 사리며 책임준공형 신탁 상품 취급을 기피하거나 수수료를 대폭 인상할 것이고, 결국 중소 건설사들은 시장 참여가 제한되면서, PF 시장은 대형 건설사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PF 시장 전반적으로 신탁사의 리스크 회피와 수수료 인상은 결국 PF 사업의 금융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사업성이 한계 수준에 있는 프로젝트의 추진을 어렵게 만들고 시장 전반의 '옥석 가리기'를 가속화 할 것이다. 대주단은 강화된 협상력을 바탕으로 더욱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겠지만, 마땅한 신용보강 수단이 사라지면서 자금 공급 자체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이 판결은 단순히 신탁사와 대주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PF 시장 전반의 참여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행사들은 기존에 신탁사의 책임준공을 통해 확보했던 대출 여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발굴 및 진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특히 자본력이 약한 영세 시행사들은 PF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건설사들 역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책임준공형 신탁에 의존해 프로젝트를 수주하던 중소 건설사들은 수주 기회가 급감할 것이며, 이는 건설 경기 전반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대형 건설사들조차도 과거와 같은 책임준공 약정을 기대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자체 신용을 통한 자금 조달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나아가 금융시장 전체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기관들은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PF 관련 익스포저(노출)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이는 부동산 시장의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져 미분양 증가, 부동산 가격 하락 등 추가적인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지역 기반의 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기관들은 PF 대출 비중이 높아 이번 판결로 인한 충격이 더 클 수 있으며, 이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건전성 문제로 비화될 우려도 있다.
결국 이번 판결은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부동산 및 건설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촉발할 것이며,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진통을 수반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과거의 안일한 관행을 버리고, 보다 투명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PF 생태계를 위한 제언
이러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지속 가능한 PF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와 금융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여러 대책을 모색하고 있습다.
먼저 금융당국은 선재적으로 기존의 형식적인 사업성 평가 기준을 개선해, 사업장별 특성과 위험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 평가 체계를 도입했다.
또한 객관적인 평가를 수행하는 전문평가기관 인증 제도를 도입하고, 대출 시 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시공사나 신탁사의 신용보강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의 본질적인 가치를 평가하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변화가 될 것이다.
또한 국토교통부와 금융당국이 운영하는 '책임준공 개선 TF'에서는 책임준공 기한 연장 사유를 합리화하고, 기한 도과 시 배상 범위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는 시공사나 신탁사에 일방적으로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려는 시도이다.
나아가 PF 부실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인 낮은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토지주가 사업시행 리츠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을 유도하고, 금융회사가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자금을 공급하도록 자본 규제를 연동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는 사업의 초기 안정성을 높이고, 사업 주체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편 신탁사의 영업용순자본비율(NCR) 산정 시 책임준공 관련 우발부채 위험을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자기자본 대비 토지신탁 수탁 한도를 설정하는 등 신탁사에 대한 건전성 규제 정비도 시급한 과제이다.
신한자산신탁 판결은 한국 부동산 PF 시장이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판결은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계약서에 명시된 '책임'의 무게를 다시금 깨닫게 하고, 발생 가능한 위험을 사전에 철저히 평가하며, 모든 주체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위험을 분담하는 성숙한 시장 환경 조성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를 일깨워 준다.
단기적으로 시장은 위축되고 관련 기업들은 고통을 겪겠지만, 그러나 이 진통의 과정은 장기적으로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PF 시장을 구축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 송태원 변호사는 경제법 전문가로 현재 법무법인(유한) 해광 파트너 변호사이다. 2007년 변호사 업무를 시작하여 삼성증권, DB금융투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네이버, 쿠팡 등 기업체에서 기업법무를 담당하였고, 서울시립대 경영학과에서 기업법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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