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믿어달라”던 트럼프, 엡스타인 앞에서 흔들리다 [특파원 리포트]
- 편지 논란에 MAGA 지지층 균열
‘진실의 전도사’ 이미지에 균열
트럼프, 정치적 아킬레스건 재부상

[이데일리 김상윤 뉴욕 특파원] “트럼프, 정말 우리 편 맞나?”
극우 성향의 팟캐스트 진행자 나탈리 윈터스는 최근 방송에서 이같이 탄식했다. 한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는 “엡스타인 사건을 계기로 지지층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처음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생일 앨범에 담긴 외설적 편지 논란에 휘말리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동요가 본격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그 편지는 가짜이며, 자신은 여성의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다”고 즉각 부인했지만, 그간 그를 ‘진실의 전도사’로 믿어온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지지층 일부는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무리한 관세전쟁, 이란 폭격 등에도 굳건했던 트럼프 지지가 엡스타인 사태로 흔들리고 있다.
“Happy Birthday…매일이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기를”
논란의 시작은 지난 17일(현지시간) 나온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였다. WSJ는 2003년 엡스타인의 50번째 생일을 맞아 엡스타인의 전 여자친구이자 미성년자 성매매를 도운 길레인 맥스웰이 지인들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모은 생일 축하 앨범을 단독 입수했다고 전했다. 그중 하나가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이 적힌 편지였다.
편지에는 여성 나체의 윤곽이 직접 그려져 있었고, “우리에겐 공통점이 많지, 제프리”라는 문장이 타자기로 인쇄돼 있었다. 마지막에는 “매일이 또 다른 멋진 비밀이 되기를”이라는 문장과 함께 ‘도널드’(Donald)라는 서명이 포함돼 있었다. WSJ는 서명이 트럼프의 것으로 보이며, 스타일도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이 편지는 단순한 생일 인사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WSJ는 그간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축소하려 했지만, 실제로는 깊은 사적 친분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나는 인생에서 여성의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이건 철저히 조작된 가짜”라며 강하게 부인했고, 해당 보도를 강행한 WSJ의 모기업 ‘뉴스코퍼레이션’과 소유주 루퍼트 머독 등을 상대로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논란은 편지의 진위보다 트럼프의 대응 태도로 확산됐다. 백악관 회의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트럼프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 자(엡스타인) 얘기를 하나?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며 일축했다. 이 발언은 그를 신뢰해온 보수 지지층에게 깊은 실망을 안겼다.
트럼프는 오랜 시간 ‘권력 카르텔(Deep State)’과 싸우는 투사, 진실을 폭로하는 정치인으로 자신을 규정해왔다. 특히 마가 지지자들은 그가 엡스타인 사태의 진실을 밝혀줄 유일한 인물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그만 잊자”는 식으로 말을 돌리자, 충성심은 배신감으로 바뀌고 있다.
한 보수 정치 평론가는 “트럼프는 오랫동안 음모론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왔지만, 지금은 그 음모론이 그 자신을 겨누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실을 요구해온 사람들이, 이제는 트럼프에게 그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엡스타인 스캔들…왜 트럼프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인가
엡스타인은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및 성범죄로 여러 차례 기소된 억만장자 금융업자다. 수년 간 전 세계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자신 소유의 섬 등지로 초청해 호화 파티를 벌이는데 소녀들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7월 성매매 및 미성년자 인신매매 혐의로 두 번째 체포됐으나 한 달 만에 뉴욕 교도소 독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사인은 자살로 발표됐지만, 이후에도 정·재계 인사들이 포함된 ‘엡스타인 성 접대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혹과 그가 타살당했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제기돼왔다.
그가 남긴 방대한 인맥 네트워크와 기록은 여전히 워싱턴과 뉴욕 정계를 뒤흔들고 있다. 트럼프 역시 과거 엡스타인과의 친분을 부정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둘이 함께한 사진, 파티 참석 기록, 목격자의 증언이 다수 존재하며, 트럼프는 한때 엡스타인을 “여자를 좋아하는 멋진 친구”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이번 WSJ 보도의 파장은 단지 한 장의 편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가 스스로의 과거와 진실에 대해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리가 알고 싶었던 진실은 왜 감추고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를 통해 확실한 보수 진영의 결집을 노리고 있지만 최근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애리조나 등 주요 경합주에서 마가 유권자들의 이탈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는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음모론 기반의 결집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워싱턴의 한 공화당 전략가는 “과거에는 트럼프가 진실을 외치며 대중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그 진실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면 이탈은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MAGA 지지…“당신을 믿어야 할 이유가 뭔가?”
MAGA 지지자들은 집요하게 묻고 있다. “딥스테이트의 실체를 아는 당신이 왜 엡스타인과의 관계는 밝히지 않느냐.” 트럼프의 해명은 과거 발언과 모순되고, 회피로 일관되는 듯한 모습은 그간 쌓아온 신뢰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기적 논란에 그칠 수도 있다고 보지만, MAGA 내부의 신뢰 균열은 장기적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들은 엡스타인과 트럼프 간 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고, 지지자들 일부는 이제 트럼프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거짓말쟁이인가? 무능한가? 아니면 타락했는가?”
“믿어달라”고 외쳤던 트럼프의 구호는 이제 지지층의 역질문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당신을 믿어야 할 이유는, 이제 무엇인가?”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정후 타격감 미쳤다…또또 멀티 히트, 3안타 폭발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이데일리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하트시그널3’ 서민재, 전 남친 또 저격…무슨 일?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손님이 늘긴 늘었어요” vs “다 남의 일”…소비쿠폰 체감 ‘제각각’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슈퍼달러에 웃었던 국민연금, 올해 환율 효과는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최근 한달 6곳 예심청구...빗장 풀리는 바이오 IPO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