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권고보다 중요한 것…의결권 행사를 설명하는 힘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 책임 있는 의결권 행사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기업, 의사결정 합리성 설명 체계 갖춰야 안정성 ↑
변화하는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과 책임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2026년 1월 일본 자본시장을 대상으로 발표된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의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 성명서’(Japan Stewardship Code Statement)다. 의결권 자문사가 특정 국가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에도 한국 시장을 대상으로 비교적 간략한 형태의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일본 성명서는 단순한 코드 준수 의지 표명을 넘어, 의결권 자문사의 판단 과정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분명한 차별성을 가진다. 특히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서비스 제공 대상인 일본 시장의 감독 당국이 권고하는 표현과 구조에 맞춰 상세한 공시를 진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글로벌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의 최근 흐름과 비교해 보면 이번 성명의 문제의식이 어디에 있는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ISS 역시 시장 변화에 대응해 ▲고객 맞춤 리서치 강화 ▲분석 범위 확장 ▲소통 방식의 구체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다만 ISS의 변화가 주로 기존 글로벌 정책 체계의 정교화와 서비스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번 글래스 루이스의 성명서는 의결권 권고가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일본 감독 당국의 문제의식과 언어에 맞춰 외부에 구조적으로 공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즉 ISS의 변화가 정책과 서비스의 진화에 가깝다면, 글래스 루이스의 성명서 발표는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과 책임을 어떻게 설명하고 정당화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응답에 가깝다. 따라서 이는 특정 국가에 국한된 대응이라기보다, 의결권 자문사를 둘러싼 글로벌 환경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는 더 이상 ‘자사 의결권 행사 기준에 따라 반대했다’는 설명만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적용된 정책이 해당 기업과 안건, 시장 환경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설명이 투자자의 책임 있는 의결권 행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함께 제시돼야 한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외부 자문사의 권고를 그대로 따르던 방식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의결권 행사에 대한 근거와 판단 과정에 대한 맥락이 한층 부각되고 있다. 최근 대형 기관투자자인 JP모건이 의결권 판단을 내부화하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한 자체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은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투자자는 ‘왜 이 같은 의결권 행사를 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자본시장에 주는 함의
한국 자본시장 역시 변화의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 강화 ▲기관투자자의 설명 책임 확대 ▲주주총회 안건의 복잡화는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의결권 행사는 기업의 합리적 소명과 의결권 자문사의 정합성 있는 분석, 그리고 기관투자자의 책임 있는 자문 활용이 맞물려 돌아가는 고도의 설득 메커니즘으로 진화하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와 기관투자자의 입장 변화를 보면 기업들은 의결권 자문사의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오해할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별 판단 기준이 세분화되고 정책 적용 방식이 다양해질수록, 기업은 ▲이사회 구조의 필요성 ▲보상 체계의 합리성 ▲특정 안건이 장기적 기업 가치에 부합하는 이유를 데이터와 맥락을 갖춘 설명으로 제시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는 기업에 부담임과 동시에 기회다. 단순한 정책 준수 여부를 넘어, 자사의 거버넌스 구조와 의사결정이 왜 합리적인지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기업은 보다 복잡해진 의결권 환경에서도 상대적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다각적인 이해관계자의 시각을 사전에 조망하고, 시장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정교한 대응 논리와 전략적 분석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의결권 자문사 역시 단순한 체크리스트식 분석이나 추상적인 정책 문구만으로는 점차 확대되고 있는 투자자의 설명 책임을 지원하기 어렵다. ▲각 국가의 제도 환경 ▲기업지배구조 관행 ▲시장 센티멘트까지 폭넓게 고려한 세분화된 분석과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제 시장에 대한 신뢰는 ▲기업 경영 판단의 타당성 ▲기관투자자의 책임 있는 투자와 의결권 행사 ▲합리적인 분석에 근거한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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