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화폐 이정표]①
“중앙은행 신뢰는 유지…보완적·경쟁적으로 공존”
각자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야
[이코노미스트 김윤주 기자] 디지털 통화 생태계를 둘러싼 정책 프레임은 ‘CBDC냐 스테이블코인이냐’의 선택 구도를 넘어, 두 체계의 공존이 유력해지고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병행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면서다. 중앙은행 중심의 통화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민간 혁신을 흡수하는 ‘투트랙 전략’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CBDC 중심, 스테이블코인은 보완”…신현송의 디지털 통화 설계
신현송 후보자는 지난 4월 6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요청한 자료에 대한 답변에서 우리나라 디지털 통화 생태계와 관련해 “중앙은행의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보완적·경쟁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 후보자는 “스테이블코인은 토큰화 자산의 거래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는 만큼 미래 통화 생태계에서 충분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며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기본적으로 찬성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중심축은 분명히 했다. 그는 “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화폐에 대한 신뢰가 핵심”이라며 “중앙은행 신뢰를 기반으로 한 CBDC와 이를 토대로 한 예금토큰이 디지털 통화 생태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도 가상자산과 같은 여타 토큰화 자산 거래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되면서 보완적·경쟁적으로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역할도 명확히 했다. 신 후보자는 “한국은행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금융시스템과 지급결제 인프라 구축을 통해 민간의 혁신을 촉진하고 지원할 예정”이라며 “은행과 핀테크 등 민간의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촉진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폐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 한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과 은행권이 협력해 예금을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형태로 전환한 ‘예금토큰’의 결제 수단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실증 사업이다. 향후 상용화까지 염두에 둔 핵심 인프라 실험으로 평가된다.
신 후보자는 리스크 관리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디지털 금융 확산은 기존 금융시스템과의 연계 속에서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며 “선제적으로 관련 취약성과 리스크를 점검하고 정책대응 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CBDC 대신 스테이블코인…홍콩의 전략 변화
해외에서는 방향성이 갈리고 있다. 홍콩은 CBDC보다 스테이블코인 중심 전략으로 선회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최근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가 주도하는 앵커포인트 파이낸셜 컨소시엄에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를 부여했다. 2025년 8월 ‘스테이블코인 조례’ 시행 이후 첫 승인 사례다.
에디 유(Eddie Yue) HKMA 총재는 “승인된 발행사들이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사업을 추진해 금융과 경제 활동의 비효율을 해소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된 스테이블코인이 개인과 기업 모두에 가치를 창출하고, 홍콩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건전한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콩은 총 36건의 신청서를 검토한 뒤 소수 사업자만 선별하는 방식으로 진입 장벽을 높였다. ▲준비금의 질 ▲리스크 관리 ▲자금세탁방지(AML) 체계를 핵심 기준으로 제시하며 ‘규제 속 혁신’ 모델을 택했다. 이는 리테일 CBDC 파일럿에서 실효성이 제한적이라는 판단 이후 나온 정책 변화다.
이외에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중앙집중형 화폐 질서의 정립을 도모하고 있으며, 미국은 민간 주도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해 디지털 달러화의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민간의 혁신성을 제도권 내로 포섭하는 한편, 디지털 유로 도입을 병행하여 통화주권의 안정적 유지를 도모하는 절충 전략을 취하고 있다.
“공존은 가능하지만, 중심은 CBDC”…글로벌 공통 인식
학계에서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의 공존에 힘을 싣고 있다. CBDC는 국가신용을 기반으로 통화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제고할 수 있으나, 설계 및 도입속도 측면에서 민간 주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주도 하에 결제 효율성과 디지털자산 시장 확장에 기여하고 있으나 ▲준비자산의 불투명성 ▲발행자 책임의 불분명성 ▲통화주권에 대한 잠재적 잠식 등 다양한 위험이 존재한다.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연구 12월호(2025)에 실린 ‘스테이블코인과 CBDC: 통화주권과 금융안정을 위한 공존형 2층 디지털 원화 체계’ 논문에서 김지연 저자는 “스테이블코인과 CBDC는 상호 대립적 개념이 아닌, 상호보완적으로 설계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며,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 규율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달러화 집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단순히 추세에 편승해 자국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발행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대응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오히려 한국은행의 주도적인 역할과 국제공조를 통해 신뢰성 높은 CBDC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통화주권 약화에 따른 리스크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향후 통화정책 영향력 약화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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