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정년연장 논의하는데…재계는 희망퇴직 ‘칼바람’[정년연장의 역설]①
- 65세 정년? 현실은 50세만 넘어도 퇴직…재계 덮친 ‘R(구조조정)의 공포'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연말을 맞아 산업계 전반에서 희망퇴직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희망퇴직은 그동안 ‘젊은 피’ 수혈과 비용 절감을 위한 연례행사였으나 올해는 그 강도가 유독 강하다는 것이 업계 전반의 평가다. 정년연장 입법화 논의가 맞물리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연말 재계를 강타한 키워드는 단연 ‘희망퇴직’이다. 과거 경영난에 시달리는 한계 기업이나 사양 산업에 국한됐던 인력 감축이, 이제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핵심 주력 계열사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인력 감원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선 인공지능(AI) 전환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 차원의 ‘체질 개선’이라는 점에서 그 충격이 남다르다.
아모레퍼시픽 5년 만의 결단…유통·소비재 ‘군살 빼기’ 본격화
칼바람의 시작은 소비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유통·소비재 업계였다. K-뷰티의 상징인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최근 전사적인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이는 지난 2020년 12월 이후 약 5년 만의 일로,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이번 희망퇴직 대상은 전사 지원 조직 및 오프라인 영업 조직 내 근속 15년 이상 또는 45세 이상 경력 입사 직원이다. ‘45세’라는 기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하던 퇴직 유도선이 40대 중반, 즉 경제 활동이 가장 왕성해야 할 허리 계층으로 내려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번 결정은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 장기화와 소비 트렌드의 급격한 디지털 전환에 기인한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영업 조직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온라인과 글로벌 이커머스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려는 의도다. 회사 측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체질 개선’이라고 설명하지만, 내부 직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아모레퍼시픽만의 문제가 아니다. 롯데그룹과 GS그룹 등 전통적인 유통 강자들도 유사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등은 이미 지난해 희망퇴직을 진행했으며,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창사 75년만에 첫 희망퇴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속 10년 이상, 1980년 이전 출생자가 대상이다. GS리테일도 최근 만 46세, 근속 20년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고정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지 않고서는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석화 불황’ LG화학, 첨단소재까지 칼 댄다
제조업의 쌀이라 불리는 석유화학 업계의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중국의 공격적인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사상 유례없는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LG화학의 행보는 이러한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LG화학은 이미 수익성이 악화된 석유화학 부문에서 희망퇴직을 진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던 첨단소재 부문으로까지 희망퇴직 범위를 확대했다. 첨단소재 사업부는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를 다루는 핵심 부서다. 하지만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지면서 전방 산업의 수요가 위축되자, 선제적인 인력 효율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재계의 희망퇴직 칼바람에 동참했다. 최근 현대위아가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그룹의 핵심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까지 사실상 희망퇴직 절차에 돌입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12월 8일 ‘리스타트 프로그램(Re-start)’ 공지를 통해 만 50세 이상 직원에게 기본연봉의 50%에 남은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최대 인정 기간은 6년이며, 지급 상한은 기본연봉의 300%다. 이외에도 자녀 학자금 1000만원, 경력개발비 1000만원, 휴가비와 차량 구매 지원금 등이 포함돼 있다.
현대모비스는 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대해 “희망퇴직이 아니라 퇴직 예정자의 경력 재설계와 교육 지원을 위한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고액 위로금과 다양한 지원금이 포함된 점을 들어 실질적인 희망퇴직의 변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년 65세 논의의 허망함…‘사오정’의 부활
이처럼 재계 전반에 희망퇴직 칼바람이 불면서,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정년 연장’ 이슈가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행정안전부는 공무직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했고, 여당은 법적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늘리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늦춰짐에 따라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일하는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은 '모두를 위한 정년연장의 쟁점과 과제' 정책브리핑을 통해 “정년연장은 고령화와 정년-연금수급연령 불일치 등으로 노인 빈곤율이 높은 한국에서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연의 문제”라며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노동시장 및 소득보장제도 개혁으로 노인 빈곤과 미래세대 부양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업 현장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정년 연장은 기업에게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정년 연장이 법제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고연차 직원들을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퇴직 연령은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52.9세, 2차 베이비부머(1964~1969년생)가 46.9세로 임금근로자들은 정년보다 7~13년 이른 시점에 일터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년 연장’이라는 이상과 ‘조기 퇴직’이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단순히 법으로 정년을 늘리는 것을 넘어, 중장년층을 위한 재취업 교육, 직무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사회 안전망 확충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매년 겨울 반복되는 ‘칼바람’은 더욱 매서워질 수밖에 없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6월 발간한 ‘정년연장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중고령 노동시장 정책의 재구성’을 통해 정년제도가 실제 노동시장에서는 극히 제한된 효과만을 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약 80%가 법정 정년에 이르기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하고 있다”며 “고령자 고용정책은 정규직 중심 설계에서 벗어나 고용 안정성과 경력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양질의 비정규직’ 제도화를 중심으로 과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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