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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내 아이에게도 주고 싶은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이코노 인터뷰]

은행

“제가 언젠가 아이를 낳는다면, 가장 먼저 가입할 상품일 겁니다.”카카오뱅크 ‘우리아이통장·적금’을 기획한 조관웅 수신서비스팀 매니저는 자신이 만든 상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카카오뱅크의 우리아이통장·적금은 부모가 미성년 자녀 명의로 개설 가능한 키즈금융 상품이다. 그는 부모들이 어떤 상품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지난 9월 서비스를 출시한 뒤, 한 달 만에 가입자 10만명을 넘겼다. 출시 3개월을 앞둔 현재 이용자 수는 3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돈을 모으는 모든 출발점이 수신입니다”카카오뱅크 수신서비스팀은 ▲돈을 모으고 ▲굴리고 ▲불리는 금융의 출발점인 수신 상품을 전담하는 조직이다. 조 매니저는 이 팀에서 서비스 정책을 기획하며, 우리아이 프로젝트의 일정 전반을 총괄하는 프로젝트매니저(PM) 역할을 맡았다.2022년 카카오뱅크에 합류한 그는 이전에는 카카오뱅크의 청소년 전용 서비스 ‘mini’의 가입 가능 연령을 만 7세까지 낮추는 작업을 담당했다. 이 경험은 자연스럽게 ‘키즈금융’ 프로젝트 도전으로 이어졌다. 우리아이 서비스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2023년 말, 그리고 출시까지는 약 2년이 걸렸다. 특히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자녀 계좌를 관리하는 구조는 기존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문 시도였다.조 매니저는 “2023년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이 개편되면서 비대면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위해 통장을 개설해 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면서 “타 은행과 차별화를 위해 많은 시간 고민했고, 부모가 자녀의 통장을 볼 수 있는 기존과는 다른 성격의 서비스를 출시하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우리아이 상품 기획자 전원이 ‘무자녀’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이 검증해야 했다는 게 조 매니저의 설명이다. 주변 기혼 동료와 지인들에게 수차례 자문을 구했고, 상품 출시 후 “정말 편하다” “이게 필요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고 한다.‘아이’ 통장이지만…‘부모의 사용성’에 집중‘왜 이렇게까지 번거로워야 하지?’ 우리아이통장·적금은 이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기존 자녀 명의 계좌는 개설부터 관리까지 번거로웠다. 가족관계증명서 제출·영업점 방문·자녀 인증서 발급은 기본이고, 계좌를 관리하려면 부모 앱에서 로그아웃한 뒤 자녀 인증서로 다시 로그인해야 했다.카카오뱅크는 이 불편함을 구조적으로 재설계했다. 부모가 자신의 휴대폰에서 자녀 계좌를 함께 관리할 수 있도록 ‘공동 참여 구조’를 설계했고, 가입 과정은 챗봇 ‘쬬르디’와 대화하듯 진행된다. 조 매니저는 “카카오뱅크 수신상품 중 챗봇 형태로 가입이 가능한 것은 우리아이 서비스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네이버 블로그, 맘카페 등에서 고객 반응을 모니터링하면, 챗봇 형태의 통장 개설 과정이 매우 편리하다는 후기를 보고 매우 뿌듯했다”고 말했다. 우리아이통장·적금의 이용자 수는 출시 약 3개월만에 3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초기 목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다. 이용자 특성도 뚜렷하다. 실제 30대 중반에서 40대 부모 고객이 많이 가입하고 있으며, 고객 중 부모 비중을 보면 엄마 고객이 70%, 아빠 고객이 30% 수준이다. 조 매니저는 “눈에 띄는 부분은 자녀가 태어나자마자 통장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가장 많고, 실제로 출생 다음 날에 개설된 경우도 많다”면서 “현재는 영유아부터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폭넓은 연령대가 고르게 가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숫자에 감성을 더하다…‘육아일기’ 대신하는 통장우리아이통장에는 숫자만 남지 않는다. 부모들이 작성하는 ‘육아일기’에 착안해 해당 서비스를 구성했다. 부모는 통장 입·출금 시 ‘첫 걸음마 한 날’, ‘처음 받은 세뱃돈’ 같은 메시지를 함께 남길 수 있다. 통장이 자연스럽게 가족의 기록장이 되는 셈이다.조 매니저는 “미성년자 금융 시장은 ‘이성적 편의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아이 통장을 대신 만들어주는 기능’에 그치지 않고, 금융 경험 속에서 부모와 아이의 감정적 연결이 자연스럽게 쌓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가 성장했을 때 부모가 남긴 메시지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통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카카오뱅크의 계획은 분명하다. 우리아이통장과 적금은 시작일 뿐이다. 향후 펀드 등 금융상품 확장은 물론,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생활 서비스까지 ‘우리아이 생태계’ 안으로 담아낸다는 구상이다.조 매니저는 “우리아이 생태계는 이제 ‘첫 삽’을 뜬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부모의 숫자만큼이나 자녀의 금융 관리에는 다양한 니즈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부모는 차곡차곡 저축해주고 싶은 반면, 어떤 부모는 투자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며 “고객들의 이러한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도록 금융상품들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 매니저는 다시 한 번 ‘이 통장을 받게 될 아이 고객’을 떠올렸다. 그는 “훗날 자녀가 이 통장·적금을 받았을 때, 엄마 아빠가 나를 위해 소중히 모아준 그 흔적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이를 위해 엄마·아빠, 더 나아가 자녀까지 가족에게 의미 있는 금융 여정을 카카오뱅크와 함께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5.12.15 09:00

4분 소요
“투자 수익에도 증여세 없다”…자녀 증권계좌 ‘절세 재테크’로 각광

글로벌

증여세 부담을 줄이면서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하려는 부모들이 ‘증권 계좌’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미성년자 계좌 개설이 비대면으로 허용되면서 절차가 간편해졌고, 주식·상장지수펀드(ETF) 등 장기 투자 상품을 자녀 명의로 보유할 경우 증여세 없이 복리 수익을 키울 수 있는 구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보다 높은 금리 환경과 글로벌 기술주의 장기 상승 흐름이 맞물리며 “아이에게 줄 돈이라면 현금보다 증권 계좌가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 특히 ▲10년간 2000만원에 대한 증여세 공제 ▲‘유기정기금’ 활용한 절세 전략 등 세제 혜택이 부각되면서 자녀 명의 계좌는 이제 단순한 저축 수단을 넘어 가족 단위 재테크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현행 세법상 미성년자에게는 10년간 2000만원까지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대부분 부모는 현금으로 용돈을 주는 수준에 머물지만, 이를 자녀 명의 증권 계좌에 넣어 투자하면 세제 측면에서 훨씬 유리해진다. 핵심은 증여 이후 발생한 투자 수익이 증여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부모가 자녀 계좌에 2000만원을 증여해 삼성전자·S&P500 ETF 등 장기 투자 상품을 매수하고 수익을 올렸다고 가정하면, 그 수익은 전액 자녀의 자산이 된다. 반면 부모 계좌에서 불린 자금을 나중에 자녀에게 넘기면 전체 금액이 다시 증여로 간주된다. 세무업계에서는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줄 의향이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자녀 명의 계좌에서 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최적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비대면 개설 허용에 참여↑…장기 자산 형성 자리매김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미성년자 투자 참여는 최근 몇 년간 매년 증가세다. 미성년자 명의의 주식 계좌는 2019년 88만7000개에서 2023년 상반기 325만8000개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 저변이 확대된 가운데, 부모가 자녀의 자산 형성과 조기 투자 교육을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어난 영향이다.세제 측면에서도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 흐름은 뚜렷하다. 현행 제도상 미성년자는 10년 단위로 2000만원까지 증여세 없이 자산 이전이 가능하다. 국세청 자료에서도 지난해 각종 재산을 증여받은 20세 미만은 1만4178명에 달했으며, 이 중 10세 미만이 6231명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제도 변화와 증여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미성년자 주식 투자 시장이 꾸준히 외연을 넓히는 모습이다. 특히 비대면 계좌 개설이 허용된 후 부모의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고, ‘자녀 첫 주식 선물하기’ ‘아이 생일 ETF 매수’ 등 장기 자산 형성 흐름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반면 미국 주식 선호는 더욱 뚜렷해졌다. 엔비디아·애플 등 빅테크 기업과 S&P500·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가 상위권에 올랐다. 미성년자 투자자들의 자산이 국내보다 해외 증시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에게 매달 용돈처럼 일정 금액을 증여할 경우 원칙적으로는 입금할 때마다 증여세 신고를 해야 한다. 번거로운 절차를 줄이는 방법이 바로 ‘유기정기금 증여’다. 일정 기간 동안 일정 금액을 증여하기로 약정해 한 번에 신고하는 방식이다.상속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할인율(3%)을 적용하면 미래 지급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달 20만원씩 10년(총 2400만원)을 증여하는 경우 현재 가치는 2047만원으로 계산된다. 면세 한도 2000만원을 소폭 넘지만, 과세표준 50만원 미만은 실질적으로 과세하지 않는다. 다만 신고 후에는 계약을 취소할 수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유기정기금은 신고만 하면 효력이 발생하므로 실제 지급하지 않더라도 취소할 수 없다”며 “계획을 충분히 검토한 뒤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미성년자가 개설할 수 있는 계좌는 크게 두 가지다. 주식거래종합계좌(일반 위탁계좌)는 국내·해외 개별주와 ETF·채권·펀드 등 대부분의 상품을 거래할 수 있다. 삼성전자·엔비디아 등 개별 주식을 사려면 반드시 이 계좌가 필요하다. 연금저축계좌는 세액공제 등 절세 혜택이 있지만 개별 주식은 매수할 수 없다. 국내 상장 ETF·펀드만 가능해 활용성은 제한적이다. 또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계좌는 19세 이상 또는 근로소득이 있는 15~18세만 가입 가능하므로 대부분의 미성년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계좌 개설 시에는 가족관계증명서·기본증명서 등이 필요하며, 증여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해 계좌 개설 시점에 증여세 신고를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해외주식 차익 100만원 넘으면 인적공제 제외해외주식은 다른 세금 규정을 따른다. 연간 차익이 250만원을 넘으면 22%의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며, 미성년자 계좌에서 해외주식 차익이 100만원 이상이면 부모의 연말정산에서 자녀 인적공제가 제외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미성년자 계좌에서는 단기 매매보다는 ETF·대형주 중심의 장기 보유 전략이 적합하다고 조언한다.전문가들은 미성년자 계좌의 핵심 전략으로 다음 세 가지 투자 축을 제시한다. 엔비디아·애플 등 미국 빅테크 종목은 장기 성장성이 뚜렷하며 복리 효과 극대화가 가능하다. 신한지주 등 안정적 국내 금융주는 높은 주주환원 정책으로 보수적 포트폴리오에 적합하다. S&P500·나스닥100·코스피200 등은 ETF 시장 평균 수익률에 안정적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자녀 계좌는 지수 ETF 중심 분산 전략이 가장 현실적인 셈이다. 자녀 명의 증권 계좌는 단순히 ‘주식 한두 주를 사주는 것’이 아니라, 세제 혜택·증여 구조·장기 투자 효과를 동시에 확보하는 자산 이전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업계 관계자는 “미성년자 증권 계좌를 만들면 현금을 주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증여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비대면 개설 허용 이후 부모들이 자녀의 10년, 20년 뒤 자산을 체계적으로 설계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5.12.15 08:00

4분 소요
제약·바이오업계, ‘리더십 재편’ 본격화…“차세대 성장 위한 새판짜기”

바이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대대적인 리더십 재편에 돌입했다. 기존 경영진 교체를 넘어, 각자 대표 체제 확대·여성 임원 전면 배치·신사업 조직 신설 등 업계 전반에서 체질 전환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오너 가문 3세를 전면에 내세우며 책임경영과 신사업 가속화 시도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모습이다. 오너 3세 전면에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과 SK그룹 계열 바이오 기업에서 오너 3세가 핵심 경영 리더로 등장한 사례는, 산업 전반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최근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부사장을 각자대표로 선임하며 경영 전면에 배치했다. 박제임스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와 그룹의 주요 신사업인 바이오 사업을 공동 지휘하게 된다. 이번 인사는 롯데가 ‘바이오’를 그룹의 미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확정하고, 오너 3세를 통해 실행력과 책임경영을 동시에 잡겠다는 의지로 읽힌다.신 부사장은 롯데지주 내 신설되는 전략컨트롤 조직에서도 중책을 맡아, 그룹 전반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과 바이오·신사업 중심 체제 구축을 주도할 예정이다.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한 신 대표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으로서 그룹 내 차세대 경영을 총괄해 온 인물이다.특히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 인수 후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확대, 인천 송도에 대규모 바이오 생산캠퍼스 건설 등 글로벌 생산 역량 강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런 ‘대형 투자 + 확장’ 기로에 젊은 리더를 전면에 세워 안정적인 성장 전략을 구상하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SK바이오팜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사업개발본부를 확대·재편해, 통합 전략 기능을 수행하는 전략본부를 새로 만들었다. 기존 사업개발본부를 이끌어온 최윤정 본부장을 전략본부장으로 선임했다. 최 본부장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장녀다. 전략본부가 맡게 될 역할은 회사의 ▲중장기 방향 설정 ▲사업 포트폴리오 관리 ▲글로벌 성장 전략 ▲신사업 검토 등 핵심 의사결정 기능이다. 즉, SK바이오팜의 미래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특히 신사업·신모달리티(치료 접근법) 중심 조직 개편도 눈에 띈다. 미래 모달리티로 주목받는 방사성의약품(RPT) 사업을 위한 RPT 본부도 새로 만들었다. 이 조직은 원료 확보부터 ▲파이프라인 개발 ▲전임상 ▲글로벌 라이선스·사업개발까지 전주기를 아우르는 구조로, SK바이오팜이 RPT를 핵심 성장축으로 본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SK바이오팜의 이번 조직 개편과 오너 3세 기용은,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그룹의 바이오사업에서 3세 책임경영이 본격화됐다는 평가다. 동시에 ▲미래 모달리티 ▲글로벌 성장 ▲신사업 다각화를 위한 실행 체계를 정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래 축 확보 위한 전략적 인사"또 다른 눈에 띄는 변화는 ‘투톱 리더십’의 확산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 뿐만 아니라 광동제약도 최성원 회장이 전략·신사업을 총괄하고 박상영 사장이 경영을 담당하는 투톱 체제를 새롭게 도입했다. 제약·음료·헬스케어 등으로 사업군이 다각화되면서 경영과 전략을 분리해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중장기 성장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가기 위한 조치다. 최 회장은 전략·신사업·연구개발(R&D) 총괄 최고경영자(CEO)로서 회사의 중장기 비전 수립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집중할 예정이다. 박 사장은 경영총괄 CEO로서 주요 사업본부와 지원조직을 총괄하며 조직운영 전반을 책임진다. JW중외제약 또한 기존 신영섭 대표 단독 체제에서 신영섭·함은경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영업·마케팅에 강점을 지닌 신 대표와 연구개발(R&D) 기반의 함 대표가 경영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핵심 사업 기능별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조직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반영됐다. JW그룹도 유전자치료제·세포치료제 등 신모달리티 연구를 강화하는 체제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C&C신약연구소 대표였던 박찬희 전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사임 이후 함 신임 대표를 선임했고, 김선영 헬릭스미스 전 대표를 R&BD 고문으로 영입하는 등 R&D 중심 개편을 이어가고 있다.연말 인사에서 이례적인 변화로 꼽히는 흐름은 ‘여성 임원’의 전면 부상이다. 다년간 남성 중심의 구조가 유지돼 온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이런 변화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창사 이래 최연소 여성 임원 두 명을 동시에 배출했다. 40대 김희정 부사장, 30대 안소연 상무가 그 주인공이다. 불확실한 글로벌 환경 속에서 민첩한 대응으로 성과와 역량을 인정받았다. 김희정 부사장은 신규 바이오 의약품 공장 램프업(가동률 확대)과 생산 규모 확대에 맞춰 안정적인 원료의약품(DS) 생산 체계를 구축해 성과를 인정받았다. 안소연 상무는 4공장 준공 후 안정화 작업을 시작으로, 생산 공정 및 일정 관리 효율화를 통해 조기 완전 가동을 달성하고, 안정적인 의약품 생산으로 매출 확대에 기여했다.GC녹십자홀딩스 역시 외부 출신 박소영 전략기획실장을 신규 영입해 그룹 차원의 중장기 포트폴리오 재편 작업을 총괄하게 했다. 박 실장은 바이오·세포치료·디지털 헬스 등 미래 사업 전반을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동제약그룹은 일동생활건강 대표이사에 박하영 상무를 선임하며 창사 첫 여성 CEO를 배출했다. 박 대표는 학술·임상·브랜드 전략 등 헬스케어 전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이번 리더십 재편은 글로벌 경쟁 환경 변화 속에서 미래 성장 축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인사’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최근 글로벌 시장은 ▲바이오 CDMO 경쟁 격화 ▲신약 상업화 성공 여부 ▲방사성의약품·세포치료제 등 신모달리티 확산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속도 경쟁까지 업계의 판이 급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연말 인사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구조적 전환”이라며 “현재 제약·바이오 기업의 핵심 경쟁력은 연구 역량 그 자체가 아니라 연구를 사업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는 실행력”이라고 평가했다.

2025.12.15 07:00

4분 소요
뱃속에서 통장 만든다…토스·카카오뱅크, 키즈금융 경쟁

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이 ‘키즈금융’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토스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영업점 없이도 비대면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한 강점을 앞세워,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차별화에 나섰다. 단순한 아이 통장·적금 판매를 넘어, 자녀의 성장 과정 전반을 아우르는 ‘가족 금융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특징이다.토스뱅크, 아이 통장 100만좌 돌파…부모 고객 “증여 미리 준비”금융권에 따르면 토스뱅크가 지난 10월 21일 출시한 ‘태아적금’의 누적 계좌 수는 12월 8일 기준 약 1만1300좌로 집계됐다. 가입 고객 4명 중 3명이 20대 후반~30대 후반으로, 아이를 기다리는 부모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후문이다.태아적금은 임신 단계부터 아이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자유적립식 적금이다. 기본금리는 연 1.0%, 우대금리는 연 4.0%이며 월 최대 20만원까지 자유롭게 납입할 수 있다. 임신확인서 등 별도의 증빙서류를 제출할 필요 없이 출산 후 태아적금 만기 전까지 자녀 명의 ‘토스뱅크 아이 통장’을 개설하면 우대금리가 자동 적용된다.앞서 토스뱅크는 지난 2023년 10월 인터넷전문은행 중 가장 먼저 미성년자 자녀의 계좌를 부모가 비대면으로 개설할 수 있는 ‘아이 통장’을 출시했다. 현재 ‘아이 통장’의 누적 계좌 수는 100만좌를 넘어섰다.토스뱅크 아이서비스는 ▲아이 통장 ▲아이 적금 ▲아이 체크카드 ▲이자 받는 저금통 등으로 구성된다. 0세부터 16세까지 자녀를 둔 부모라면 영업점 방문이나 복잡한 서류 제출 없이 앱에서 통장 개설부터 적금 가입, 체크카드 발급까지 한 번에 진행할 수 있다.아이 통장은 단순한 예금 계좌를 넘어 부모가 송금·조회·적금 납입을 함께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개설 이후에는 최고 연 5.0% 금리의 아이 적금도 가입 가능하다. 아이 적금은 거래 실적과 상관없이 자동이체만 성공하면 최고금리가 적용되며, 15세까지 월 최대 20만원을 12개월간 납입할 수 있다.실제로 아이 통장을 증여 목적으로 활용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미성년 자녀에게 10년간 증여할 수 있는 비과세 한도는 2000만원으로, 매달 적금을 쌓아두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자산을 이전하려는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토스뱅크 관계자는 “아이 적금의 납입 한도를 월 20만원으로 설정한 것도, 단순 저축을 넘어 기념일이나 용돈 등 아이를 위한 소규모 증여성 자금 관리까지 고려한 결정”이라며 “과도한 부담 없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이처럼 토스뱅크는 태아적금에서 아이 통장·아이 적금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했다. 뱃속에서부터 아이를 위한 저축을 시작하고, 출생 이후에는 아이 이름으로 통장과 적금을 만들어주는 흐름을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장기적인 금융 습관을 형성하고,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꾸준히 모으는 경험’을 제공한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태아 단계부터 아이가 성장하는 전 과정에서 연속성 있는 자산 형성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아이 성장에 따라 토스뱅크와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뱅크도 ‘우리아이’로 맞불…한 달 만에 10만명카카오뱅크도 키즈금융 시장 경쟁에 본격 가세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9월 15일 ‘우리아이통장’과 ‘우리아이적금’을 동시에 출시했다. 서비스 출시 이후 하루 평균 4000명의 고객이 꾸준히 찾아, 약 한 달만에 이용자 수 10만명을 넘어섰다.‘우리아이통장’은 0세부터 만 16세 이하 자녀를 대상으로,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본인의 휴대폰을 이용해 100% 비대면으로 개설할 수 있는 상품이다. 가족관계증명서 등 별도의 서류 제출 없이, 대화형 인터페이스로 설계된 ‘쬬르디’ 챗봇을 통해 간편하게 가입 가능하다.특히 부모가 함께 자녀의 계좌를 관리할 수 있도록 한 ‘공동 참여 구조’가 눈에 띈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통장을 개설한 뒤, 어머니에게 초대 링크를 보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이후 부모는 각자의 휴대폰에서 자녀 계좌 내역을 동시에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으며, 자녀가 본인 명의의 휴대폰을 보유한 경우 직접 계좌를 확인하며 금융생활을 경험할 수도 있다.금융 거래에 가족 간 정서를 녹인 점도 카카오뱅크의 차별화 요소다. 부모가 입·출금 시 ‘첫 걸음마 한 날’, ‘첫 번째 세뱃돈’과 같은 메시지나 이모지를 남기면, 자녀가 이를 확인하고 ‘좋아요’를 누를 수 있다. ‘우리아이’ 서비스 페이지 화면을 자녀 사진으로 꾸밀 수 있어, 성장 과정을 금융 기록과 함께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함께 출시된 ‘우리아이적금’은 금리 경쟁력이 강점이다. 기본금리 연 3.0%에 자동이체 조건을 충족하면 추가로 연 4.0%포인트를 더해 최고 연 7.0%의 금리를 제공한다. 가입 기간은 12개월이며, 매월 최대 2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만기 시 자녀 나이가 만 18세 미만일 경우 자동 연장 기능이 적용돼 장기적인 자산 관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카카오뱅크는 키즈금융을 단기 상품이 아닌 장기 고객 확보 전략으로 보고 있다. 회사 측은 ‘우리아이통장·적금’과 같은 차별화된 상품 출시가 신규 고객 유입과 수신 확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우리아이 서비스는 통장·적금을 시작으로 펀드 등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며 “미성년자 고객과 부모의 락인(Lock-in) 효과를 통해 수신을 확대하고, 보유 한도에 제한 없이 장기간 저축을 유도할 것”이라고 했다.

2025.12.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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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맨' 노태문 vs '가전왕' 류재철, 데뷔 미션은 도전보다 '1등 굳히기'

IT 일반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과 류재철 LG전자 사장이 회사 지휘봉을 잡자마자 글로벌 무대에서 맞붙는다. 첫 신경전에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데, 막상 두 리더는 같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일단 흔들리는 주력 사업의 왕좌 굳히기에 힘을 쏟을 것으로 관측된다.업계에 따르면 노태문 사장과 류재철 사장은 내년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6’에 나란히 출격한다. 지난달 말 수장에 오른 노 사장과 류 사장은 회사에 몸담은 뒤 한 우물만 판 뚝심의 사나이들이다.노 사장은 직무대행을 떼고 DX(디바이스 경험)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반도체 사업을 책임지는 전영현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장과 투톱 체제를 완성했다. 지난 1997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3팀에 입사해 28년간 휴대전화에 역량을 쏟은 정통 삼성맨이다. 혁신제품개발팀장·개발실장·MX(모바일 경험)사업부장에 이어 디바이스 사업을 총괄하는 DX부문장에 올랐다.류 사장 역시 37년 LG맨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 가전연구소에 입사해 세탁기·냉장고 생산담당, 에어컨 사업담당을 거쳐 2021년부터 본부장을 맡아 가전 사업을 이끌어왔다. LG전자 측은 “류 사장의 경영 철학은 ‘문제 드러내기’와 ‘강한 실행력’”이라며 “사업의 본질적 격차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철저한 자기 인식을 주문한다”고 전했다.노태문·류재철 입 모아 ‘AI 퍼스트’두 리더는 CES 개막 전 사전 행사를 열어 미래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먼저 삼성 노 사장은 ‘CES’ 이틀 전 라스베이거스 윈 호텔에서 열리는 신제품 행사 ‘더 퍼스트룩’에서 대표 연사로 마이크를 잡는다. DX부문장에 선임된 이후 첫 공식 석상이다. 각각 TV와 가전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용석우 사장과 DA사업부장 김철기 부사장도 무대에 올라 사업 계획을 공유한다. 가전과 모바일을 아우르는 첫 데뷔전인 만큼 기존에 회사가 추진해 온 인공지능(AI) 홈·초개인화 AI 스크린 전략을 소개할 것으로 관측된다.그는 올해 9월 독일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5’에서 “삼성전자는 반세기가 넘는 역사 속에서 TV·가전·모바일까지 지금보다 더 척박한 환경을 딛고 글로벌 리딩 컴퍼니로 거듭난 저력을 가지고 있다”며 “혁신의 DNA를 바탕으로 AI 홈 역시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현실화하며 글로벌 선구자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이어 LG 류 사장은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개최하는 프레스 콘퍼런스 ‘LG 월드 프리미어’에 미디어, 파트너사 관계자 등 1000여명을 초청해 ‘공감지능’의 진화한 모습을 공개할 계획이다.공감지능은 전임 조주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초에 제시한 회사의 차별화 AI 비전이다. 기술적 관점을 뛰어넘어 AI가 고객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미래를 지향한다. 류 사장도 앞서 수립한 미래 전략의 틀을 다지는 데 주력한다. 그렇게 나흘간의 CES 일정을 마치고 복귀한 두 CEO는 숨 돌릴 틈 없이 신년 전략 구상에 돌입할 전망이다. AI를 필두로 한 신사업에 일부 힘을 쏟으면서도, 맹렬한 추격에 위태로운 글로벌 리더십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삼성전자의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격변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어 바짝 긴장한 상태다. 애플이 14년 만에 판매량 1위를 찍는 것도 모자라 출시 전략을 대폭 수정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애플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판매량) 기준 19.4%의 점유율로 삼성전자를 누르고 1위에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프리미엄 라인업을 주로 내놨던 애플은 매출로는 줄곧 1위를 지켜왔지만, 출하량으로 삼성전자를 제치는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여기에 애플은 연 1회 가을 출시 전략을 상반기(보급형)와 하반기(프리미엄)로 나누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쏠림 현상을 해소하고, 보급형으로도 시장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삼성전자도 보급형 라인업을 강화해 애플의 물량 공세에 맞설 것으로 예측된다. ‘아이폰16’ 시리즈가 점령한 올해 3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톱5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삼성전자 제품은 S 시리즈도, Z 시리즈도 아닌 저가의 ‘갤럭시A16 5G’였다. 마침 3년 전 출시가 마지막이었던 ‘갤럭시A7X’ 모델의 부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불안한 1등’ 탈피 과제LG전자도 녹록지 않은 경쟁 환경에 직면했다. 중국 브랜드들이 TV에 이어 가전으로 영토를 확장해 안방을 공략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만 앞세웠던 과거와 달리 품질 경쟁력도 확보했다.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올해 3분기 세계 TV 시장 매출 점유율을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29.0%, 15.2%로 선두를 지켰다. 중국 TCL(13.0%)과 하이센스(10.9%)가 바짝 뒤쫓고 있다.그런데 출하량 기준으로 봤더니 순위가 확 바뀌었다. LG전자(10.6%)가 TCL(14.3%), 하이센스(12.4%)에 밀려 4위로 주저앉았다. LG전자가 프리미엄 라인업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를 주력으로 내세우기는 하지만, 전체 TV 시장에서 매출 순위까지 따라잡히면 브랜드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다.글로벌 1위 위상을 자랑하는 가전 사업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필수 가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로봇청소기는 중국 로보락이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넘어서며 막강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중국의 애플’로 불리는 샤오미는 올해 여의도 IFC몰·구의·마곡·잠실새내 등에 오프라인 매장을 잇달아 오픈한 데 이어 용산에 첫 서비스센터를 구축해 고객 접점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류재철 사장은 IFA 2025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의 추격을 두고 “위협이 엄중한 건 사실이나 넘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고 자신했다.

2025.12.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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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은 맞지만 내 마음대로 못 하는 저작권도 있다 [백세희의 컬처&로(LAW)]

전문가 칼럼

2000년대 초반에도 법과대학에는 ‘저작권법’ 수업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제 문화예술 업계에서 저작권이라는 것은 마치 ‘공중도덕’ 내지는 ‘미풍양속’처럼 막연히 지켜지면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달리 도리가 없는 것 정도로 여겨졌다.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이제 저작권침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게 되었다.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작권은 주로 ‘돈’이 되는 권리의 측면이다. 과거 히트곡 하나로 저작권 수입이 짭짤해 살만한 가수, 소프트웨어 저작권침해를 이유로 내용증명을 날려 합의금 장사를 했다는 사람 등등 주로 재산권적인 측면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작권이 독립된 두 개의 권리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저작권은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이라는 별개의 권리로 이뤄져 있으며 저작권은 이들 권리의 복합권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별개인지 하나인지 왜 중요할까? 소송물 이론이라는 법논리를 빼고 우리에게 와닿게 핵심만 말하자면, 돈이 이중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해서다. 저작재산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과 저작인격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는 따로 받거나 따로 물어줘야만 한다.작품은 곧 ‘작가의 인격적 발현’불법 다운로드는 저작재산권 침해의 문제다. 그렇다면 저작인격권은 무엇일까. 저작인격권은 창작물과 창작자 사이에 발생하는 특별한 ‘인격적 이익’의 보호다. 작품의 소유권자와는 별개로 오로지 창작자에게만 인정된다. 특별한 인격적 이익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이러한 권리의 모호함이 저작인격권의 본질이다. 그래서 이른바 ‘소유권 절대의 원칙’에 입각한 영미법계에서는 애당초 저작인격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다가 차차 받아들이게 됐다.반대로 유럽의 대륙법계 국가들의 경우 저작인격권은 창작자 자신조차도 포기할 수 없는 ‘자연법적 권리’라는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태생적으로 알쏭달쏭한 권리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일본은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대륙법 체계를 따르고 있지만, 발전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영미법계의 논리나 제도도 많이 수용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저작권법이 인정하는 저작인격권을 알아보자. 저작인격권은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으로 구성된다.먼저 공표권은 미공표 저작물의 공표 여부를 결정하는 권리다. 공표할 경우 어떠한 형태나 방법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리 및 공표 시기를 결정하는 권리가 포함돼 있다. 이들은 저작자의 명성이나 지위, 권익 및 저작물의 상업적 가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판단을 전적으로 저작자에게 맡긴 것이다.성명표시권은 자신의 성명 또는 이명 등을 표기해 자신이 저작자임을 주장할 권리와 저작자명을 표시하지 않고 무명으로 공표할 권리를 포함한다. 저작자명을 표시하는 것은 창작물의 내용에 대한 책임과 평가가 귀속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밝힐 뿐만 아니라 저작물과 저작자를 연결하는 명예권과도 관련이 있다. 동일성유지권은 창작자의 의사에 반하는 변형을 통한 작품의 왜곡을 금지하는 원상유지권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저작물은 저작자의 인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변경을 자유롭게 허용한다면 저작자의 감정을 해치는 동시에 창작의욕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무단 변경행위를 금하는 것이다. 현재 작품을 소유하고 있는 소유자라 하더라도 함부로 작품을 변형할 수 없는 근거가 바로 동일성유지권이다. 내 것이지만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뜻이다.동일성유지권이 문제된 실제 사례들동일성유지권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다수 있다. ‘지하철 벽화 사건’은 성명표시권과 동일성유지권이 모두 문제가 된 사례다. 서울시 도시철도공사는 2001년 원화 작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원화를 이용해 지하철 ▲약수역 ▲한강진역 ▲학동역 역사 내부에 벽화를 제작했다. 당연히 작가의 항의가 있었다. 하지만 벽화들은 계속 전시됐고 결국 작가는 2004년 손해배상 등의 소를 제기했다. 2006년 법원은 원화 작가의 저작재산권과 저작인격권 모두의 침해를 인정했다(서울중앙지법 2006. 5. 10. 선고, 2004가합67627 판결). 법원은 저작인격권 중 동일성유지권과 관련하여 “원고의 연작 작품 중 일부만을 벽화화했거나 제작방식이 원고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됐으며(테라코타 방식에서 타일방식으로), 작품의 위·아래를 거꾸로 설계·시공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의도를 훼손해 설치되거나 전시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 설계업체와 도시철도공사는 원화에 대한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약수역과 한강진역에 설치된 벽화의 작가란에는 ‘작가미상’이라고 표시돼 있고, 학동역의 벽화는 아예 작가표시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저작인격권 중 성명표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도 판단했다. 위 지하철 벽화 사건처럼 소송으로까지 비화되지 않았지만, 서울 대치동 포스코(posco) 본사 앞의 ‘꽃이 피는 구조물 – 아마벨’(이하 아마벨)이라는 조형물도 논란의 중심이 된 적이 있다. 아마벨은 가로·세로·높이 각 9미터, 무게 30톤의 거대한 철제 조형물로서 현대예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이다. 비행기 잔해와 스테인레스스틸을 이용해 ‘폐기된 문명의 이기로 피어난 꽃’을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고철을 이용한 조형물이 난해하고 흉물스럽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포스코 측에서는 작품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이 알려지자 작가와 그를 옹호하는 이들이 주장한 권리가 바로 저작인격권 중에서도 동일성유지권이었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만으로 작품이 변형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 사건에서 왜 동일성유지권이 문제 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아마벨은 철강기업인 포스코 본사에 설치되어 포스코라는 기업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작가가 처음부터 그곳에 설치할 것을 전제로 구상한 후, 현장에서 직접 고철과 준비된 철 조각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했으므로 작품과 그 장소와의 밀접한 상관성이 인정될 여지가 많다. 저작권법 제13조 제2항은 불가피한 변경은 허용하면서도 저작물의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은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 저작권법에 의할 때, 아마벨처럼 설치될 특정 장소를 전제했다면 그 장소의 변경이 ‘본질적인 내용의 변경’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포스코가 작품의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작가가 허락하지 않는 한 장소를 옮기기 어려운 것이다. 논란 끝에 포스코는 아마벨을 원래의 자리에 두는 대신 주변에 나무를 심고 아름다운 색 조명을 덧입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마벨은 그 후로 한 신문사가 주최한 공공미술 기업문화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했지만, 해외 미술 분야의 유명 매체인 ‘아트넷 뉴스’가 발표한 ‘가장 미움받는 조형물 10선’에 선정되는 등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작가에게 작품이란 ‘자식’ 같은 존재작가에게 이런 일은 단순한 소송거리, 뉴스거리를 넘어 심한 상처로 남는다. 대부분의 작품은 구상 단계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예술가의 정신과 체력을 쏙 뽑아내기 때문에 ‘자식’과도 진배없다. 그런데 그런 자식이 위아래가 뒤집히고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고 공표되고 전혀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어딘가 엉뚱한 곳에 가 있는 모습을 본다면…. 뒤늦게 소송에서 일부 승소해 금전적인 보상을 약간 받는다고 해도 그 상처가 전부 나을 리 만무하다.수년 전만 해도 주변 예술인들에게 이러 저러한 사례를 말해 주면 “어머, 그건 아니지. 당연히 안되는거 아냐?”라는 정도의 반응이 나올 뿐, 구체적으로 자신의 창작물에 대하여 어떤 권리를 갖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창작자들의 권리 의식이 함양되어 부당한 저작인격권 침해를 묵과하는 일은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저작인격권이 침해됐다며 상담을 요청받는 빈도도 늘고 있다. 일이 많아진다는 것, 변호사로서는 참 다행인 일이다.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2025.12.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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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키즈금융’ 상품·플랫폼 속속…미래 고객 잡아라

은행

과거에는 동전을 차곡차곡 모으는 ‘돼지저금통’이 아이들의 금융 첫걸음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출생 이후 즉시 ‘아이통장’을 개설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은행들은 앞다퉈 ‘키즈금융’ 상품을 내놓으면서, ‘0세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0세부터 가입하는 적금 눈길…출생 연계 혜택 확대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에서는 출생 직후부터 가입 가능한 미성년자 전용 상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KB아이사랑적금’은 임신확인서 제출 시 우대금리를 더해 최고 연 10%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아동수당 수령 여부, 미성년 자녀 수 등에 따라 우대금리가 추가되며 취약계층 대상 1%포인트 우대도 제공한다. KB국민은행의 ‘KB 영유스’(Young Youth) 적금도 최고 연 3.4%의 금리를 제공한다. 신규·재예치 시 자녀 연령(만 0·7·13·16·19세)에 따라 연 0.5%포인트를 우대해준다.신한은행은 ‘다둥이 상생적금’을 통해 다자녀·출산 가구 고객에게 최고 연 8% 금리를 제공한다. 가입 기간 12개월, 월 납입 한도 30만원으로, 결혼·출산·임신 등 저출생 대응 활동을 금리 혜택으로 연결한 것이 특징이다.하나은행의 ‘(아이)꿈하나 적금’은 최고 연 3.75%까지 금리를 준다. 기본금리 2.95%에 아동수당 수령 등 우대금리 조건을 충족하면 최대 연 0.8%포인트를 추가 제공한다. 출생 후 1년 이내이거나 초·중·고교 입학 나이가 되는 해에는 1년간 연 3.0%의 특별금리를 준다.여기에 최근 출시한 미성년자 전용 상품 ‘꿈꾸는 저금통’은 세후 원리금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자동 재예치되는 구조로, 부모의 장기 자산관리 수요를 반영했다. 기본금리는 연 2.0%, 최고금리는 연 4.0%이다. 하나증권 연계, 주택청약 가입 여부 등에 따라 우대금리가 최대 1.8%포인트까지 추가된다.하나은행 관계자는 “단순한 적금이 아닌 아이들의 첫 금융 경험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상품”이라며 “작은 저축이 큰 꿈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이외에도 우리은행의 ‘우리 아이행복적금2’는 기본금리 2.45%에, 경찰청 지문사전등록·자동이체 등 요건을 충족하면 최고 연 3.65% 금리를 제공한다.이처럼 은행권이 키즈금융 상품을 출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에게 첫 금융계좌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금융 습관 형성으로 이어지고, 은행 입장에서는 미성년자 전용 상품이 장기 고객 확보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 번 개설된 주거래 통장은 결혼·취업 이후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인 수익 기반 확보 효과가 크다. 플랫폼 경쟁으로 확장…금융교육·생활 콘텐츠까지최근에는 ‘상품 출시’ 단계를 넘어 키즈 금융 플랫폼 전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0월 기업은행은 아이성장 맞춤형 플랫폼 ‘아이 봄’을 선보였다. 임신·출산부터 청소년기까지 필요한 금융·생활·건강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서비스로, 행정안전부와 협업해 산모 혜택과 정부 지원 정보를 한 앱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 봄’은 출산을 앞두거나 미성년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이번 서비스는 기업은행 사내 학습조직에서 제안한 아이디어를 사업화한 것으로 행정안전부와 협업을 통해 업계 최초로 산모 맞춤 혜택과 정부의 아이 관련 혜택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예정된 일정과 혜택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알림 기능을 통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였다. 현재 출산 축하금 등의 이벤트도 진행해 사용자들의 반응도 뜨겁다는 후문이다.‘아이 봄’은 ▲아이의 자산관리를 돕는 ‘금융라운지’ ▲AI기반 작명 서비스, 산모수첩 등 출산 관련 혜택을 위한 ‘출산 비금융라운지’ ▲영유아 검진 등 육아 관련 혜택을 제공하는 ‘육아 비금융라운지’로 구성됐다. 해당 서비스는 개인고객용 모바일뱅킹 앱(i-ONE Bank 개인)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하나은행은 알파세대를 위한 체험형 금융플랫폼 별도 앱 ‘아이부자’를 운영하며 알파세대 금융습관 형성에 초점을 맞춘다. 용돈 관리, 금융 퀴즈, 습관 형성, 학교 급식·시간표 연동 등으로 자녀와 부모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국민은행도 어린이·청소년 전용 금융 서비스 ‘스타틴즈’를 통해 만 6세 이상~만 18세 이하 고객을 사로잡았다. 고객들은 선불지갑인 ‘포켓’ 서비스로 출금·송금·충전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수수료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만보챌린기·한국사 매일퀴즈 등 앱테크 기능으로 재미요소도 넣었다.김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금융회사는 유소년 대상 금융플랫폼을 제공해 금융이해력 제고 외에도 ▲미래고객 선점 ▲가족고객 확보 ▲구독서비스에 따른 수수료수익 창출 효과를 기대한다”면서 “국내 금융회사도 금융교육과 융합된 유소년 전용 금융플랫폼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의 실천과 수익창출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5.1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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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도 홀로 성장…럭셔리 브랜드의 새 주인공 ‘하이 주얼리’ [이윤정의 언베일]

전문가 칼럼

최근 소비 패턴을 살펴보면 몇 년 전에 비해 럭셔리 브랜드의 인기가 주춤한 모습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럭셔리 브랜드 활황’과 비교하면 요즘의 럭셔리 브랜드 시장 상황은 낯설게 느껴진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중심의 소비가 이뤄지면서 럭셔리 브랜드 제품 구매가 감소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럭셔리 브랜드의 판매 아이템별 매출을 비교해 보면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훨씬 잘 나가는 품목이 있다. 바로 ‘하이 주얼리’(고급 장신구)다. ‘원석’ 중심 디자인…자산 가치 상승하이 주얼리는 자주 접하는 펜던트·반지·팔찌 등과는 다르게 최고의 원석을 사용해 장인이 수십 혹은 수백 시간 동안 수작업으로 만드는 제품으로 예술 작품에 비견되기도 한다. 흔히 3대 주얼리 브랜드로 불리는 까르띠에·타피니·불가리를 포함한 다수의 브랜드는 매년 여름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소개한다. 부호들이 휴가를 가기 전 프랑스 ‘생 트로페’, 이탈리아 ‘포르토피노’ 등 유명한 휴양지에서 선보이는 각 컬렉션은 패션과 마찬가지로 주제가 있다. 각 컬렉션에 소개되는 제품은 한 점씩만 만들어진다. 누군가 이미 선점했다면 웃돈을 주더라도 똑같은 피스를 만들 수 없을 만큼 ‘희소성’이 중요하다. 하이 주얼리의 또 다른 특징은 원석에 맞춰 디자인한다는 점이다. 옷이나 가방이 디자이너의 철학이나 콘셉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다르다. 진귀한 오팔을 구했다면 그 오팔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디자인으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올해 까르띠에가 선보인 하이 주얼리 컬렉션 ‘앙 에킬리브르’(En Equilibre)의 카파야테(Cafayate) 목걸이는 원석 중심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프레드의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인 ‘1936, 솔레이 도르 선라이즈’(Soleil d’Or Sunrise)에서 옐로 다이아몬드를 이용해 소개한 목걸이도 하이 주얼리에서 원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원석의 중요성은 자연스럽게 하이 주얼리를 자산의 일부로 여기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지난 2020년 핑크 다이아몬드 채굴로 알려진 호주의 아가일 광산은 문을 닫았다. 영국의 광물 채굴 및 판매사인 젬필즈(Gemfields)의 보고서에 따르면 루비의 주 산지인 미얀마와 모잠비크 등에서는 산출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점점 채굴이 어려워지고, 가치는 높아지면서 자산으로서 원석의 매력은 상승하고 있다. 불황이 계속되고 경제가 어려울 때 타격을 많이 받는 계층은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중산층인 경우가 많다. 초고소득층은 오히려 불황에 돈을 더 버는 일도 왕왕 있다. 다이아몬드·사파이어·골드·에메랄드·루비 등의 최고급 원석으로 만들어지는 하이 주얼리는 대개 가격이 몇억원부터 시작하고,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 피라미드상에서 최상단에 있다. 하이 주얼리의 고객은 경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계층인 셈이다. 결혼반지로 ‘인기’…패션 브랜드도 비중 늘려하이 주얼리의 인기를 경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주얼리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한몫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중장년층에게 보석은 결혼할 때 구매해 집 안에 고이 모셔놓는 존재다. 요즘 소비자는 주얼리도 자신의 취향을 나타내는 하나의 요소라고 여기고 스타일에 따라 주얼리를 구매한다. 예물 반지로 무조건 ‘다이아몬드 반지’를 택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최근 결혼하는 부부는 유명 브랜드의 반지를 선호한다. 취향을 드러내면서 일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결혼반지로 특히 인기 있는 부쉐론의 ‘콰트로’, 까르띠에의 ‘러브’와 ‘트리니티’의 매출에 본사도 깜짝 놀랄 정도다. 인기 브랜드의 지형도 바뀌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까르띠에·불가리·티파니 등 결혼반지로 유명한 3대 브랜드 외에도 몇 년 전부터 반클리프 아펠·프레드·쇼메·부쉐론·다미아니·그라프 등의 인기가 높아졌다. 하이 주얼리가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며 루이비통·디올·샤넬 등의 패션 브랜드도 제품 포트폴리오에서 하이 주얼리의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국내 소비자의 취향과 매출이 알려지면서 각 브랜드의 본사에서는 한국 소비자를 잡기 위해 한국에서 우수고객(VIP) 행사를 열거나 한국에서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소개하는 일도 잦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새로운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유럽이나 중국에서 주로 선보였던 사실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화다. 하이 주얼리는 국내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소개됐지만 국내 고객의 눈을 사로잡지 못했다. 하이 주얼리를 구매하더라도 유럽이나 홍콩처럼 착용하고 나갈 사교 행사도 턱없이 적었다. 점차 주얼리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지면서 각 브랜드에서는 VIP 행사를 통해 VIP가 하이 주얼리를 과시할 기회를 제공한다. 필자가 참석한 주얼리 브랜드 VIP 행사에서 자사의 주얼리를 개성 있게 착용한 고객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영국 패션 전문 매체 ‘더 비즈니스 오브 패션’(BoF)에 따르면 향후 몇 년간 주얼리 매출은 패션 매출의 4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28년까지 주얼리는 매년 약 5.3~5.6% 성장할 전망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성장이 다소 주춤할 거라는 전반적인 예상과 다르게 하이 주얼리의 독주가 기대되는 상황이다.하이 주얼리는 각 브랜드가 최고의 원석으로 숙련된 장인을 통해 만드는 예술 작품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필수 조건인 ‘희소성’과 ‘작품성’을 충족하는 하이 주얼리는 럭셔리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프리미엄 패션·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노블레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으로 일했다. 럭셔리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한 초기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명품 시장의 성장과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현재 브랜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며 디엘(DL)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5.12.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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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국의 최고 히트작 AI와 로봇, 다음 단계는 [특파원 리포트]

국제 이슈

연말을 맞아 중국 남쪽으로 여행할 계획이라는 중국인 장모씨. 여행 일정을 어떻게 짰냐고 물으니 “‘딥시크’(DeepSeek)에 물어봤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화면엔 중국 남부 광시성의 4박 5일 일정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우리가 한때 궁금한 것을 ‘지식인’에게 물어봤던 것처럼 이제 중국에서 어지간한 질문은 모두 딥시크가 답한다.올해 중국 최고의 히트작을 딥시크라고 꼽는데 이의는 없을 듯하다. 이전에도 알리바바의 ‘퉁이첸원’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있었으나 딥시크의 충격은 더 컸다. 챗GPT 수준의 기능을 갖췄음에도 훨씬 저렴하게(게다가 무료로 사용 가능) 만들어진 딥시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때부터 주목받은 중국의 AI 기술력은 휴머노이드 로봇 열풍으로 이어졌다. 중국 AI 기술을 적용한 로봇들이 경기장에서 뛰어다님은 물론 실제 공장에 투입하며 양산화의 기반을 다졌다. 내년에는 어떤 중국의 첨단 기술이 불쑥 등장할까, 기대와 걱정이 함께 나오고 있다. 중국 경쟁력, AI와 로봇 열풍 속 성장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중국에서 출시된 생성형 AI 딥시크는 오픈AI의 챗GPT와 비견될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았다. 딥시크가 최소한의 AI 칩으로도 개발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에 10% 이상 급락하는 등 세계적으로 여파가 컸다. 중국의 춘제(음력 설) 연휴 직후 첫 업무일인 지난 2월 5일 항저우에 있다는 딥시크 본사를 직접 찾은 적이 있다. 아무런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그곳엔 한국은 물론 일본과 홍콩, 중국 등에서 1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결국 딥시크 창업자인 량원평 인터뷰나 기업 내부 탐방은 무산됐으나 그만큼 딥시크에 쏠린 관심을 보여줬던 사례다.딥시크를 필두로 중국 기술 기업들은 생성형 AI 육성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알리바바의 퉁이첸원 ▲바이두의 ‘원신’(어니봇) ▲텐센트의 ‘훈위안’ 등이 대표적이다. 하반기엔 중국 스타트업 문샷AI가 대형언어모델(LLM) ‘키미’를 내놔 또다시 전세계 업계가 들썩였다.중국 기술 기업들은 AI에 막대한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 알리바바는 앞으로 3년간 클라우드와 AI 분야에 38억위안(약 79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에 비해 첨단 기술에 대해선 개인정보나 지적재산권(IP) 분야 규제가 상대적으로 포용적인 것도 중국의 강점이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정책을 주도하니 상대적으로 민간 업체간 협조도 잘 이뤄지는 편이다.중국의 AI 기술이 더 주목받은 점은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급속한 성장이다. 올해 4월 베이징에서는 20여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참가한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렸는데 마치 사람처럼 뛰어가는 모습에 많은 사람이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8월 개최한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대회는 본격적으로 100~1500m 달리기부터 높이뛰기, 멀리뛰기와 축구, 농구, 격투기 등 다양한 종목이 진행된 ‘로봇 올림픽’이었다.대회가 열렸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웠던 건 휴머노이드 로봇만으로 올림픽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중국의 기업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첨단 기술' 분야 전환, 중장기 경제정책 기조 중국 첨단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놀라움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실제로 AI와 로봇 관련 산업은 물론 금융시장에도 돈이 유입되는 추세다.중국 기술 기업이 주로 상장한 홍콩의 항셍종합지수는 올해 27% 가량 오르며 중화권 상승세를 주도했다. AI 대표 기업으로 분류되는 알리바바의 경우 올해 주가 상승폭이 83%에 달한다.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주도하는 유니트리는 기업공개(IPO)를 통한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로이터통신은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유니트리 기업 가치가 500억위안(약 10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중국의 로봇 기술이 실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미 국내에서도 중국 로봇 관련주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이 나와서 거래되고 있다.중국은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이에 따른 수요 둔화로 극심한 경기 부진 상태다. 연간(11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제로(0%)일 정도로 경기 침체 속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 밖으로는 미국과 관세 전쟁이 진행 중이다.안팎의 불안정에도 중국은 올해 5% 안팎의 경제 성장률 목표 달성을 자신하고 있으며, 최근 발표한 15차 5개년 계획(2026~2030년) 초안에선 2035년 1인당 총생산(GDP)의 중등 선진국 진입을 공식화했다.중국이 경제 성장에 확신을 가지는 이유는 첨단 기술의 성장 때문이다. 지금까지 부동산이나 전통 제조업으로 키웠던 중국 경제를 앞으로는 AI 같은 첨단 분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중장기 경제 정책의 기조다.물론 이러한 중국의 청사진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첨단 기술에 대해 미국 등 선진국 의존도가 높은데 중국을 견제하는 통상 환경이 수시로 변하고 있다.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는 중국 정부가 언제까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이에 비례하는 성과를 거둘지도 미지수다.그렇다고 바로 옆 이웃국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를 무시할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중국의 기술 자립도가 높아질수록 대중 수출은 물론 첨단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마침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고 여러 지정학적 정세에 따라 최근 한·중 관계가 개선의 신호를 찾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협력과 경쟁을 통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5.12.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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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빅딜 ‘연타석 홈런’...진격의 LG엔솔

자동차

완성차 업계가 너나없이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을 찾고 있다. 북미와 유럽을 잇는 합작·단독 공장, 전기차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이어지는 포트폴리오 다변화, 고니켈·원통형·LFP(리튬인산철)까지 아우르는 제품군 등이 맞물리면서다. LG엔솔의 몸값이 날로 높아지면서, 업계에서는 '진격의 LG엔솔'이라는 표현까지 나온다.완성차 러브콜 잇따라LG엔솔의 저력은 완성차 빅딜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지난 2023년 10월 LG엔솔은 토요타 미국법인과 하이니켈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파우치형 배터리 모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25년 미국 미시간 공장에서 양산을 시작해 토요타의 북미용 배터리 전기차(BEV)에 탑재하는 조건이다. 토요타는 2030년까지 연간 최대 350만대 BEV 생산을 목표로 잡고 있다. LG엔솔은 해당 계약으로 혼다에 이어 두 번째 일본 완성차 고객을 확보했다. LG엔솔은 GM·포드·스텔란티스 등 북미 주요 완성차에 더해 토요타·혼다·현대자동차그룹과 모두와 협력하는 업체가 됐다.LG엔솔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7월에는 6조원 규모에 이르는 초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냈다. 단일 계약 기준으로 LG에너지솔루션 역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고객사는 미국 대표 전기차 업체 테슬라다. LG엔솔은 자동차용이 아니라 ESS에 들어가는 LFP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했다. 계약 기간은 2027년 8월 1일부터 2030년 3월 31일까지다. 여기에 메르세데스 벤츠 물량이 더해졌다. LG엔솔은 12월 벤츠와 2조601억원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추가로 체결했다. 공급 지역은 유럽과 북미다. 계약 기간은 2028년 3월부터 2035년 6월까지다. 이는 2024년 10월(50.5GWh), 2025년 9월(총 107GWh) 등 앞서 체결된 세 건의 공급 계약에 이어지는 추가 물량이다. 이 때문에 2028년 이후 벤츠 전기차 라인업에서 LG엔솔 비중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북미 완성차와의 합작도 공격적이다. LG엔솔은 GM과 합작법인 '얼티엄 셀즈'(Ultium Cells)를 설립해 미국 오하이오와 테네시에서 배터리 공장을 운영 중이다. 해당 공장은 내년 1월 5일부터 약 6개월간 가동을 멈추지만, LG엔솔이 선제적인 대미 투자로 미국 내 다수 생산 설비를 이미 구축한 만큼 ‘기초 체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혼다와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연간 40GWh 규모의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했다 총 44억달러(약 6조원)이 투자됐다. 해당 공장은 올해 말 설비 설치를 끝내고 양산을 계획 중이다. 공장이 가동될 경우 고성능 순수 전기차 약 50만대 분량의 배터리 생산이 가능해진다.현대차·기아와는 미국 조지아주에 합작공장을 세워 연간 30GWh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북미 지역만 놓고 보면 LG엔솔은 ▲미시간주 ▲오하이오주 ▲테네시주 등 8개의 생산 거점을 갖고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는 ‘우려’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는 배터리 업체들에 ‘시험대’가 됐다. 이런 상황 속 LG엔솔은 상품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먼저 전기차 부문에서는 차량 세그먼트별로 배터리 솔루션을 세분화해 대응한다. 고출력·급속충전이 요구되는 고성능 차종에는 파우치형 '하이니켈 NCMA' 배터리와 니켈 함량을 94% 이상으로 높인 원통형 46시리즈를 적용한다. 표준형 모델에는 고전압 미드 니켈 제품을 공급해 에너지 밀도와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중저가급 모델에는 연말 양산을 앞둔 LFP 파우치형 제품을 투입한다. 여기에 향후 건식 전극 기술을 더해 가격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NCM·LFP·LMR 등 다양한 라인업에 더해 파우치형·원통형·각형까지 모든 폼팩터를 공급할 수 있는 ‘풀 라인업’ 체제를 갖추는게 LG엔솔이 그리는 청사진이다.ESS 분야 주도권 강화도 나선다. ESS 사업에서는 셀부터 시스템 운영·관리까지 전 단계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다. 롱파우치형 폼팩터 기반 고밀도·고집적 셀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용량을 키우고, 단위당 비용을 낮춘 신제품을 개발 중이다. 2027년까지는 각형 기반 LFP ESS 제품도 선보일 예정이다.충북 오창 공장에는 ESS 전용 LFP 라인을 구축해 2027년 양산을 시작하는 계획도 공개했다. 고니켈 삼원계(하이니켈)와 함께 LFP까지 포트폴리오를 늘리며, ‘프리미엄 전기차–보급형 전기차–ESS’를 모두 커버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물론 마냥 장밋빛은 아니다.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는 장기전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로 인한 가격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추세다. 특히 LFP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거세다. LG엔솔이 ESS용 LFP부터 시작해 보급형 전기차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려 하는 것도 이 경쟁 구도 속에서 해법을 찾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현지 생산 확대도 양날의 검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현지 보조금이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는 건 맞지만, 동시에 미국·유럽의 인건비·에너지 비용, 환경 규제, 노조 변수 등 새로운 리스크도 안게 된다. 완성차의 생산 계획이 바뀌거나, 보조금 제도가 수정되면 합작공장의 가동률·수익성은 곧바로 영향받게 된다.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서구 지역은 주로 삼원계 배터리를 많이 활용하는데, 삼원계 배터리는 LG엔솔의 주력이기 때문에 주목 받는 것”이라며 “다만, 전 세계적으로 전기차 수요가 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 부분에 대해선 충분히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25.12.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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