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해외시장 개척 '잔혹사'-실패 원인 '셋' [CEO 110인 긴급진단]⑦
- 정치 보복에 잘나가던 롯데마트 등 中 떠나야
KB국민은행, 금융권에 해외 투자 실패 남겨
현지화 실패 반복…리스크 대응 역량이 관건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은 ‘낯선 규칙의 전장’에 가깝다. 저성장의 늪에 빠진 국내보다 빠른 성장을 이어가는 해외가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지만, 곳곳에 실패를 유발하는 암초가 깔려 있다. 국내 기업은 자본과 정보, 네트워크 면에서 글로벌 기업들 사이에 언제나 후발주자다. 여기에 각국의 정책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친다면 버티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규제와 소비성향은 국가마다 다르고, 경제 환경은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 기업의 ‘해외 철수’가 반복되는 이유다.
관세·정치 리스크 직격탄…해외 사업 수익성 흔들
해외 진출을 꾀하는 기업들에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것은 진출 국가의 정책 변화와 정치적 리스크다. 가장 최근엔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 강화로 한국 기업에 직접적인 부담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4월 2일부터 외국산 자동차를 상대로 25%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 영향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해에만 7조2000억원의 재무적 부담을 져야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연간 매출로 186조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9.5% 감소한 11조원에 그쳤던 배경에도 관세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철강·알루미늄 상품과 반도체와 의약품 등 주요 산업에 대해서도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여전하다. 기업들은 이런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할 경우 관련 업종 전반의 수익성 악화뿐만 아니라 투자 위축, 해외 진출 포기 및 철수와 같은 일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기업 입장에서는 정치 지형 급변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을 가장 우려할 수밖에 없다. 행정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사업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중장기 투자 계획 수립도 어려워져 해외 사업 전반의 리스크가 확대되는 경우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정치 리스크 변화에 따른 경영 타격이 발생해 해당 지역 철수가 이어진 사례들도 있다. 중국의 사드(THAAD) 보복이 본격화됐던 2017년 이후 유통·관광·소비재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던 것이다. 그 전까지 국내 기업들에게 중국은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 정치적 변수가 부각되며 사업 환경은 급격히 악화됐다.
롯데쇼핑은 2008년 중국 시장에 진출해 롯데마트 점포를 110여개까지 확대하며 중국을 해외 사업 거점으로 구축해갔다. 하지만 사드 사태 이후 영업 환경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2018년 중국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이후 2022년에는 청두 롯데백화점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는 등 사실상 중국 유통 사업에서 완전히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때 5개까지 늘렸던 백화점 사업도 정치적 변수 앞에서는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롯데쇼핑은 중국에서의 실패를 발판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을 해외 진출 국가 타깃으로 삼아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현지 이해 부족에 ‘대형 투자 실패’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변화와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해외 진출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권에서는 KB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투자가 대표적 사례로 남는다. KB국민은행은 2008년 약 9541억원을 투자하며 당시 현지 5~6위 은행인 BCC 지분 41.9%를 인수했다. 하지만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현지 금융 환경과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2017년 전액 손실 처리 후 매각했다.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BCC를 인수할 당시에 순이자마진율 6.2%, 부실채권 비율 0.6% 등 수익성과 재무안정성을 두루 갖춘 알짜 매물을 인수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당 은행의 손실이 급증하기 시작했고, 주가 급락도 막지 못했다. 금융업계에서는 KB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투자가 ‘금융권 최악의 해외 진출 실패’ 사례로 남게 됐다고 본다. 해당 투자의 실패 배경으로는 예상치 못한 금융 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BCC의 영업 및 리스크 관리 능력 부족 등이 꼽힌다.
현지 동종 업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입지를 확보하지 못해 철수하는 사례들도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베트남 시장에서 결국 철수를 결정했다. 2019년 현지 배달 플랫폼 ‘비엣남엠엠’을 인수하며 이 시장에 진입했고, 한때 베트남 음식 배달 시장에서 점유율 3위에까지 올라섰지만 현지·글로벌 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밀리며 점차 수익성 확보에 실패하기 시작했다. 이에 우아브라더스 베트남은 2025년 들어와 전년보다 자본잠식 규모가 확대되며 재무 건전성이 악화됐다. 해당 법인은 지속된 적자로 인해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지 4년 만인 2023년 영업을 중단했고 현재는 법인 정리 수순에 들어간 상태다.
해외 진출 국가의 규제로 인한 실패 사례도 있다. 토스는 2019년 베트남에 만보기형 리워드 서비스를 앞세워 진출해 300만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지만, 금융 플랫폼으로의 전환에는 실패했다. 현지 규제 환경으로 신규 서비스 출시가 제한되면서 사업 확장이 어려워졌고, 결국 1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뒤 철수했다.
10년 이상 운영해온 사업조차 수익성과 전략 변화 앞에서 철수 대상이 된 사례도 있다. 식자재 유통·푸드서비스 기업 CJ프레시웨이는 2013년 베트남에 진출했지만, 올해 2월 종속법인 청산을 결정했다. 2년 연속 순손실을 기록하며 재무적 부담이 커졌고 본사 중심의 글로벌 소싱 체계로도 사업을 유지할 필요성이 낮아졌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10년 이상 운영해온 사업조차 수익성과 전략 변화 앞에서는 철수 대상이 된 셈이다.
“정부도 국가 상호주의 통해 기업들 보호해야”
기업들의 해외 진출 실패 원인은 특정 산업을 가리지 않고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진출 국가의 정책 변화 및 정치 리스크 ▲현지 경쟁 심화 ▲전략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해외 진출 실패를 유발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현지 기업과의 경쟁을 넘어 정치 변화로 인해 영업력이 뒤처지는 경우엔 단순한 자본 투입만으로는 시장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코트라)는 2019년 내놓은 ‘세븐일레븐의 실패에서 배우는 인도네시아 진출 시 유의점’에서 급작스럽게 변하는 정부 규제에 기업들이 충분한 대비책을 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정부기관의 주류 유통 규제로 세븐일레븐 매출의 15%를 차지하던 주류 판매가 금지되자 함께 판매되던 안주 및 간식 판매량까지 줄어 세븐일레븐의 매출은 24%가량 급락한 바 있다. 2016년 기준 세븐일레븐은 규제에 발이 묶여 인도네시아에서의 점유율이 0.7%로 떨어진 상황을 맞았다.
코트라는 기업의 현지 소비자에 대한 이해 부족도 함께 거론했다. 인도네시아 세븐일레븐의 무료 와이파이와 야외 테라스가 사업 초반에 긍정적인 요인이 됐지만, 소비자가 해당 서비스만 이용하고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흔해졌다. 특히 프리미엄 상품 위주로 구성된 영업이 매출 악화를 불러온 것으로 분석됐다.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과거처럼 시장 규모만 보고 진출하는 방식으로는 성공 확률이 낮다”며 “현지 규제와 소비자 특성, 경쟁 구도에 대한 분석은 필수고 리스크 분산 전략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실패를 줄이기 위한 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현지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2024년 발표한 ‘중국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해외 진출 사례 연구 및 시사점’에서 정부의 지원 또한 기업의 해외 진출 실패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금융지원만 아니라 국가 사이의 상호 규제로 기업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최 연구원은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차별적인 규제를 받는다면 우리도 상호주의(reciprocity) 원칙에 따라 해당 국가의 기업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유럽·인도·동남아 등 지역의 정부들이 공급망의 내재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차별적 규제도 마다하지 않고 있어 우리 기업이 언제든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정부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카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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