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세계적 친환경 제련소’라는 석포제련소…정화자료는 비공개, 왜?
- 영풍, 미국서 무방류 시스템·환경투자 성과 강조
오염토양 정화계획·검증자료엔 “경영·영업상 비밀”
경북행심위, 봉화군 부분공개 결정 취소
환경충당부채 과소계상 등으로 204억원대 과징금도
영풍은 폐수를 공장 외부로 배출하지 않는 무방류 시스템과 환경개선 투자를 친환경 제련소의 핵심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환경업계에서는 무방류 설비 하나만으로 제련소 전체를 친환경 사업장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오염물질과 토양·지하수 오염, 폐기물 처리, 온실가스 배출, 과거 오염지역의 정화 이행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서 "석포는 세계적 친환경 제련소" 소개
논란은 영풍이 미국에서 석포제련소를 친환경 제련소로 소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최근 미국 테네시주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 관련 리셉션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장세환 영풍이앤이 부회장은 석포제련소에 대해 “2019년부터 다양한 환경개선 사업과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세계적인 친환경 제련소로 변모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은 석포제련소가 친환경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폐수 무방류 설비'다. 석포제련소는 공정에서 발생한 폐수를 정화해 다시 사용하는 무방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오염된 물이 낙동강 상류로 직접 배출되는 것을 막고 공업용수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무방류 시스템은 제련소의 여러 환경관리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점에서 무방류 시스템 설치만으로 '세계적 친환경' 제련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로 폐수를 내보내지 않더라도 공정 과정에서 대기오염물질과 폐기물, 토양·지하수 오염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농축수와 슬러지 등 처리 등도 과제다.
특히 석포제련소는 공장 내·외부 오염토양 정화 문제를 안고 있다. 토양오염이 확인된 지역을 어떤 방법과 범위, 일정에 따라 정화하고 있는지, 정화가 법적 기준에 맞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는 친환경 제련소 주장에 대한 핵심 검증 자료다.
그러나 영풍은 최근 석포제련소의 오염토양 정화이행계획서와 토양정화 검증자료 등의 공개 요청에 대해 경영·영업상 비밀이라는 이유로 비공개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석포제련소 오염토양 정화 이행 "영업비밀" 비공개 요청
경북 거주자 A씨는 지난 1월 봉화군에 석포제련소 내·외부 토양 정화업체 계약 현황과 오염토양 정화 이행 상황, 정화기간 연장 근거, 정화명령 기한 경과에 따른 조치내역 등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봉화군이 정보공개 청구 사실을 영풍에 통지하자 영풍은 자료에 제련소 건물과 설비 위치가 담겨 있고 토양 정화 방법과 절차가 회사 및 외부 정화업체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비공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화이행계획서 역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내부 검토 자료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봉화군은 영풍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자료를 부분 공개했다. 그러나 오염토양 정화가 실제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검증자료와 정화이행계획서 등 핵심 자료는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A씨가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경상북도행정심판위원회는 봉화군의 부분공개 결정처분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행심위는 제련소 건물과 설비 위치를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고도의 경영·영업상 비밀로 단정하기 어렵고, 자료 공개가 영풍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하게 침해한다는 점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토양정화 검증자료와 정화이행계획서는 기업의 단순한 내부 자료가 아니라 오염 책임이 있는 기업이 정화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환경정보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설 보안이나 구체적인 비용 등 일부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다면 해당 부분만 가린 뒤 오염도와 정화 범위, 공정률, 검증 결과 등은 공개할 수 있다는 취지다.
금융위, 환경개선 비용 충당부채 과소계상 과징금 204억 부과
영풍의 친환경 주장을 둘러싼 신뢰성 논란은 회계 문제로도 이어진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영풍에 회계처리기준 위반을 이유로 204억741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융당국은 영풍이 석포제련소의 토양·지하수 정화와 환경개선 등에 들어갈 비용을 충당부채로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조업정지 위험 등을 유형자산 손상평가에 적절하게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증권선물위원회는 감사인 지정과 전 대표이사에 대한 해임권고 상당 등의 조치도 의결했다.
환경정화 비용은 단순한 비용 추정 문제가 아니다. 오염 복구에 필요한 금액을 실제보다 적게 잡으면 기업의 부채와 비용은 줄고 이익과 자산은 상대적으로 크게 표시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이 부담해야 할 잠재적 환경비용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영풍은 금융당국의 판단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회사 측은 환경충당부채 산정 과정에서 회계적 추정과 판단의 차이가 있었을 뿐 고의로 비용을 축소하거나 은폐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사업장이라는 평가가 기업의 자체 홍보나 특정 설비의 도입 여부만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무방류 시설이 실제로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뿐 아니라 대기·수질·토양 오염 수치가 지속적으로 개선됐는지, 과거 발생한 오염이 계획대로 복구되고 있는지, 관련 자료를 주민과 투자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업계 관계자는 “무방류 시스템은 수질오염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시설이지만 이를 갖췄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장 전체를 친환경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며 “친환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면 오염물질 배출량과 토양정화 이행률, 법규 위반 내역 등 객관적인 지표를 공개하고 외부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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