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AI 다음은 피지컬 AI…엔비디아가 LG를 선택한 이유
- [엔비디아가 그리는 로봇 제국, LG가 만든다]②
가상 세계 벗어난 AI, 물리 법칙 제어하는 피지컬 AI 시대로
젠슨 황도 반했다…지능형 제조 플랫폼으로서 LG의 재발견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 화면 속에서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던 인공지능(AI)이 이제 현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가 '소프트웨어 AI' 시대를 열었다면, 산업의 무게중심은 이제 ▲로봇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물류자동화 ▲냉난방공조(HVAC) 등 현실 세계를 제어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엔비디아(NVIDIA)가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업으로 출발한 엔비디아는 AI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며 현실 산업을 연결하는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핵심 파트너로 한국의 LG그룹이 떠오르고 있다.
삼겹살 회동 이후 급물살 탄 협력
지난 6월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한 고깃집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가졌다. 편안한 식사 자리였지만 피지컬 AI 시대를 앞둔 글로벌 협력의 출발점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소 회동 이후 양사의 협력은 빠르게 구체화됐다. 젠슨 황 CEO는 직접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찾아 구 회장과 회동했고, 구 회장은 로비까지 나가 황 CEO를 맞이했다.
당시 구 회장은 "오늘 엔비디아와 함께 미래의 방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며 "AI 시대를 더욱 앞당기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협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세부적인 이야기까지 이어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며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만나 협력을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약속은 곧바로 실행으로 이어졌다. LG그룹 경영진은 2주 뒤인 지난 6월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해 엔비디아 경영진과 ▲피지컬 AI ▲AI 인프라 ▲미래 모빌리티 ▲차세대 로봇 플랫폼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엔비디아는 왜 수많은 글로벌 제조기업 가운데 LG를 선택했을까. 답은 피지컬 AI의 본질에 있다.
피지컬 AI가 생성형 AI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물리 법칙'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가상 공간에서는 중력과 마찰, 날씨 변화까지도 정해진 변수 안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공장 바닥에 떨어진 작은 볼트 하나 ▲갑자기 끼어드는 보행자 ▲기온 변화에 따른 금속의 미세한 수축까지 AI는 수많은 변수를 실시간으로 인식하고 판단해야 한다. 결국 AI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제어하려면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학습하는 '월드 모델(World Model)'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피지컬 AI는 현실의 불확실성을 극복해야 하는 만큼 산업적 파급력도 생성형 AI보다 훨씬 크다. 스마트팩토리에서는 생산 공정을 스스로 최적화하고, 물류 현장에서는 자율주행 로봇이 배송을 수행하며, 빌딩에서는 AI 기반 공조 시스템이 에너지 소비를 실시간으로 제어한다. AI는 더 이상 사람을 돕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공장과 물류, 도시를 움직이는 산업 인프라가 되고 있다.
탈중국 목표로 LG에 손 내밀어
결국 미래 산업 경쟁력은 더 똑똑한 AI 챗봇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공장과 도시, 가정을 얼마나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AI를 확보했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엔비디아가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지정학적 리스크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공급망 안정성과 보안이 AI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다.
피지컬 AI 하드웨어는 국가 핵심 인프라와 제조 현장에 직접 투입된다. 만약 로봇이나 공조 시스템, 자율주행 장비 등에 보안 취약점이나 백도어가 존재한다면 기업은 물론 국가 인프라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주요 서방국들은 중국산 하드웨어와 플랫폼에 대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뛰어난 제조 경쟁력을 갖췄지만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중국 기업과의 협력이 미국 정부 규제와 서방 시장의 보안 우려를 동시에 불러올 수 있는 부담 요인이다.
결국 엔비디아가 필요했던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과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그리고 정치·안보 측면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업으로 LG가 부상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축이며, LG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주요 산업 정책에 대응하며 글로벌 제조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韓 '피지컬 AI 강국' 도약할 기회
LG의 강점은 단순한 제조 규모가 아니다. 생활가전과 전장, 산업용 설비를 통해 축적한 방대한 공간 데이터와 글로벌 양산 능력, 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제조 역량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단순한 제조기업이 아니라 AI를 현실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지능형 제조 플랫폼'인 셈이다.엔비디아와 LG의 협력은 한국 AI 산업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국내 AI 경쟁력은 초거대언어모델(LLM) 등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피지컬 AI 시대에는 제조 경쟁력과 하드웨어, 공간 데이터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AI를 잘 만드는 국가에서 AI를 현실 산업에 가장 잘 적용하는 국가로 경쟁의 축이 이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지컬 AI는 AI 모델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실 공간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이를 실제 제품과 공장에 구현할 수 있는 제조 기술, 안정적인 공급망이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엔비디아가 제조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영진 핀릿 연구원은 "LG전자는 가전과 전장, 부품 경쟁력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로봇 하드웨어 플랫폼 기업"이라며 "피지컬 AI의 핵심은 실제 공간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학습인데 LG는 가전과 스마트홈, 전장,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이 본격화할수록 LG의 하드웨어 파트너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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