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방은행, 흡수합병 대신 일본식 ‘연합 지주’ 모델 주목하는 이유
- [지방은행 생존전략, ‘연합체’ 구상]②
구조조정 없는 M&A, 갈등 줄이고 단기간에 체급 키우는 장점
M&A 패러다임의 전환…“연합체는 ‘만능키’ 아니다” 지적도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한국 지방 금융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커지는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이 지방 금융사에 제안한 ‘연합형 지주사’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국내 시중은행들이 걸어온 화학적 결합을 통한 인수합병(M&A)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연합형 지주사 모델이란 통합 지주사 아래로 각각의 기업이 가진 브랜드와 사업 모델을 유지하면서 유기적으로 관계사가 협력하는 형태를 말한다.
얼라인은 최근 영남권을 주 사업 영역으로 활동하는 BNK금융지주와 호남권의 JB금융지주의 합병 검토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지역 경제가 가라앉으며 지방 금융사의 고사 위기가 커지는 와중에, 이를 타개하기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합병 방식으로는 통합 지주사를 머리로 두고 그 산하에 전북·광주·부산·경남 등 4개 은행의 법인·브랜드·로컬 영업망은 그대로 유지하는 연합체 형식을 거론했다. 현재도 BNK금융지주는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라는 두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그 확장형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연합체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물리적·화학적 통합 과정에서 생기는 막대한 갈등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점포 통폐합이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없이 지주사 체급만 키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BNK금융의 총자산은 약 161조원, JB금융의 자산이 73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양사의 결합으로 총자산 234조원 규모의 금융사가 새로 태어나게 된다.
두 회사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다른 지역에서 점포가 겹치는 사례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BNK금융과 JB금융의 수도권 점포 수는 각각 19곳·27곳이지만 ▲충청권 1곳·6곳 ▲호남 0곳·153곳 ▲경북·대구·경남 94곳·0곳 ▲부산·울산 132곳·1곳 수준이다. 사실상 호남과 영남이 양분돼 각 브랜드의 오프라인 점포를 유지하더라도 경쟁을 통한 출혈 가능성이 적다는 뜻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과거 시중은행의 흡수합병 모델을 보면 완전히 하나의 기업으로 융합하는 데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리며 진통이 컸다”며 “당장 체급 키우기가 목표인 지역은행이 연합형 지주사 모델로 M&A를 진행할 경우 이런 진통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필요성 컸던 시중은행의 ‘화학적 대통합’과 차이
과거 국내 은행들의 M&A 역사를 보면 지금의 연합체 모델과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 모두 외환위기(IMF)를 전후로 기존 은행들을 흡수하며 성장했다.
시중은행이 흡수합병을 선택한 배경에는 M&A의 최우선 목적이 시너지 창출이 아니라 부실 자산 도려내기와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중복된 점포를 폐쇄하고 수천 명의 인력을 감원하기 위해서는 법인을 완전히 합쳐 하나로 만드는 방식이 적합했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정부와 예금보험공사도 부실을 깔끔하게 털어낸 단일 대형 은행을 만들기 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깨끗한 하나의 대형 은행으로 만들어놔야 해외 매각이나 유상증자를 통해 투입한 자금을 손쉽게 회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적 한계도 있었다. 2000년 이전까지는 ‘금융지주회사법’이 없었다. 지주사라는 우산 아래 여러 자회사를 두는 지배구조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에 상법상 A은행이 B은행을 흡수합병하는 물리적 단일화 방식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여기에 1990년대 후반 미국 씨티그룹 등의 대형화 성공 사례에서 비롯된 메가뱅크 열풍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 2000년 10월 관련 법이 제정되면서 이듬해 우리금융지주가 국내 최초 금융지주사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일본 FFG가 증명한 단계적 연착륙…효율성 한계 지적도
그러나 최근 금융 환경이 달라지면서 M&A 모델의 변화 필요성이 커졌다. 특히 구조조정이 아니라 체급 키우기가 목적인 M&A에서는 복잡한 갈등 요인을 수반하는 흡수합병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얼라인이 일본 지방은행들의 ‘단계적 연착륙’ 성공 방정식을 벤치마킹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후쿠오카파이낸셜그룹(FFG)은 2000년대 후반부터 지주사 체제를 활용해 후쿠오카은행·구마모토은행·친제이은행 등을 산하에 두고 각 지역의 독자 브랜드와 로컬 영업망을 유지했다. 이른바 ‘멀티 브랜드 연합체’ 전략을 폈다. FFG는 나가사키 지역의 오랜 라이벌이었던 주하치은행과 신화은행을 지주사 밑으로 품은 뒤 10여 년을 그대로 유지하며 지원했다.
외부 마찰을 차단하면서 ▲지주사 차원에서 전산망 일원화 ▲자금 조달 창구 통합 ▲백오피스(후선업무) 일원화 등 실질적인 시스템 통합을 진행하고 시너지를 검증했다. 시장의 거부감이 사라진 이후에야 법인을 하나로 합쳐 ‘주하치신화은행’이라는 완전 통합 법인을 출범시켰다. BNK금융과 JB금융의 결합이 현실화한다면 일본식 연합체 방식을 고려할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합체 모델이 지방 금융의 모든 숙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키는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느슨한 연합이 갖는 구조적 한계도 명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브랜드와 영업점·법인을 각자 유지하는 구조에서는 ‘인력·점포 통폐합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 지주사라는 대형 관리 조직이 하나 더 위에 얹어지면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는 비효율성이 더해질 수도 있다. M&A의 가장 큰 이점인 비용 절감 효과가 줄어드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본식 연합체 모델은 지방은행들이 당면한 위기 속에서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일 수 있지만 정답은 아니다”라며 “지주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실질적인 시스템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지역 사회의 신뢰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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