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AI로 웹소설 한편 뚝딱…'5000자 구원투수' Vs '대필작가'
- ‘노트북 한 대와 AI’로 진입장벽 낮춰…매일 5000자 연재 중노동 구원투수
독자 거부감·문장력 퇴화 우려…“창작 본질은 인간 작가 고유성에 있어”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인공지능(AI) 기술이 전 산업 분야로 확산되는 가운데, 웹소설 영역에서도 AI 활용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자료 정리나 단순 오탈자 교정에 머물던 AI의 역할은 이제 스토리 구성과 대사 작성, 나아가 작품 전반을 집필하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기술의 발달이 창작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췄다는 찬사가 나오는 한편, 독자들의 거부감과 작가 윤리 부재, 문장력 퇴화라는 경고음도 동시에 울리고 있다.
최근 네이버웹툰과 문피아가 공동 주최한 ‘2026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의 최종 수상작이 공개되며 웹소설 시장의 열기가 다시 한번 입증됐다.
올해 공모전에는 총 1만편 이상의 작품이 접수돼 전년 대비 약 35% 증가한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신인 작가들의 폭발적인 증가세다. 전체 참여 작가 7400명중 유료 연재 경험이 없는 신인 작가는 6600명으로, 전체의 89.2%를 차지했다. 특히 10~30대 참가자 비율이 80% 이상을 차지하며 젊은 창작자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이처럼 폭증한 데에는 경기 침체와 취업난, 원작 지식재산권(IP)의 드라마화 등 2차 창작 수익 성공 사례가 늘어난 점이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바탕에 ‘AI를 통한 창작 활동의 용이성’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웹툰과 달리 전문적인 미술 실력이나 고가의 장비가 필요 없는 웹소설 특성상, 노트북 한 대와 생성형 AI 툴만 갖추면 누구나 아이디어만으로 즉시 집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매일 5000자 중노동 구원투수로 떠오른 AI
웹소설 창작 현장에서 AI의 가장 큰 강점은 ‘생산성 혁신’이다. 주 5회 이상, 회당 최소 5000자에 달하는 가혹한 연재 일정은 작가들에게 만성적인 피로와 번아웃을 안겨왔다. AI는 이 같은 중노동을 덜어주는 보조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문장력이 부족해 머릿속 아이디어를 글로 풀어내지 못하던 지망생들에게 AI는 완성도 높은 초안을 제시한다. 아울러 시대적 배경 조사나 전문 지식 검색, 단순한 배경·외모 묘사에 소요되는 시간을 대폭 줄여준다.
여기에 더해 서사 전개가 막혔을 때 AI는 작가와 대화하며 다양한 스토리 선택지를 제시하는 조력자 역할도 수행한다. 아이디어는 풍부하나 글재주가 부족했던 이들에게 AI는 창작의 진입장벽을 부수는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AI 활용의 그늘 역시 짙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작품을 소비하고 구매하는 독자층의 차가운 시선이다. 독자들은 AI 특유의 어색한 번역투 문장이나 평이한 연출을 빠르게 가려낸다. 특히 ‘돈을 주고 읽는 글에 작가의 고민과 정성이 빠졌다’며 강력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AI 사용 정황이 포착된 작품이 독자들의 비판 댓글과 함께 구설수에 오른 사례도 적지 않다.
더욱 문제되는 것은 기술적 적발의 어려움과 법적 공백이다. AI 관련 법안이 점차 체계화되고 있으나, 창작자가 AI 활용 여부를 명시하도록 강제할 법적 의무는 아직 없다. 여러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공모전 출품작 등에 있어 웹소설 작성시 AI 활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를 적발한 검수 시스템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특히 작가가 자신의 기존 연재작이나 필체를 AI에 학습시켜 웹소설을 작성할 경우, 인간이 직접 쓴 글과 구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미발표 투고작이나 연재작의 AI 사용 여부는 전적으로 작가 개인의 도덕성에 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웹소설업계 관계자는 “AI를 자료 조사나 배경 설명 등에 활용하는 작가들은 이미 많다”며 “웹소설 전반을 AI로 작성해 올리는 예비 작가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AI로만 작성한 글들은 아직은 어딘가 엉성한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AI로 썼는지를 100% 잡아낼 방법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작가 스스로의 역량 퇴화도 경계 대상이다. AI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작가가 스스로 어휘를 고민하고 인물의 복잡한 감정선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문장력이 퇴화해, 결국 천편일률적인 양산형 웹소설만 남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력자인가, 대필자인가
웹소설 현장의 창작자와 산업 관계자들은 AI의 도입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명확히 그었다.
부업으로 웹소설을 작성하고 있는 직장인 작가 A씨는 “매일 5000자를 채워야 하는 마감 압박 속에서 AI는 리서치 시간을 줄여주는 유용한 보조원”이라면서도 “AI가 써준 문장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넣는 창작 방식은 작가 스스로를 망치는 길이며, 작가의 피땀 어린 고민이 담기지 않은 글은 결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밝혔다.
장민지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작가 입장에선 AI를 통해 확실히 자료조사가 쉬워졌다. 예전에는 전문직이 나오는 웹소설들의 경우 전문직에 대한 자료를 다 일일이 찾아야했는데, 그런 자료나 인터뷰 같은 것들을 이제는 AI를 통해 살펴볼 수 있게 됐다”며 “다만 스토리, 대사와 같은 작가 고유의 창작적 부분은 아직은 AI가 대체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독자들도 AI를 사용할 경우 직감적으로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웹소설의 경우 작가의 독자적인 문체나 아이디어같은 것들이 그 장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그 부분은 아직 AI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웹소설 시장에서 AI는 이미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아이디어는 있으나 문장력이 부족한 신인에게는 ‘창작의 기회’를, 마감에 시달리는 기성 작가에게는 ‘생산성 향상’을 안겨주는 득(得)이 될 수 있다. 반면 무성의한 대필과 문장력 퇴화, 독자 신뢰 붕괴로 이어질 경우 생태계 전체를 흔드는 독(毒)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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