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반
“연애·취업·독립 다 귀찮아요” ‘아무것도 안 하는 청년’ 늘어나는 이유는?
- 취업 미루고 부모와 살고 연애도 안 해
AI로 신규 취업 문턱 높아져
주거비 생활비도 급증
대기업 30세 이하 고용 비중 21.2%→18.3%
미국·프랑스도 부모 의존·NEET 증가
[이코노미스트 서지영 기자] "취업도, 연애도, 독립도 굳이 서두르고 싶지 않아요. 제 페이스대로 갈래요."
대기업의 청년 채용이 급감하면서 취업은 물론 독립과 연애까지 미루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반복되는 취업 준비에 지쳐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온다. 청년층의 사회 진입이 늦어지면서 취업·독립·연애로 이어지던 전통적인 생애 경로가 흔들리고 있다.
일 하지 않는 청년
25세 A씨의 하루는 낮 12시부터 시작된다. 눈을 뜨면 침대에서 휴대전화를 한참 들여다본다.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 사이트를 둘러보다가도 이내 닫는다. 몇 번의 지원과 탈락을 반복하면서 이제는 어떤 스펙을 더 쌓아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친구를 만나거나 연애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돈도, 시간도 여유가 없다. 당분간은 부모와 함께 살면서 쉬고 싶다는 게 A씨의 생각이다.
A씨와 같은 청년이 늘고 있다. 취업을 미루고, 독립하지 않고, 연애도 하지 않는다. 단순히 ‘의욕 없는 청년’으로 치부하기에는 노동시장과 주거비, AI 등 청년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18일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500대 기업 중 연령별 고용 현황을 공개한 132개사를 분석한 결과, 신규 채용 인원을 공개한 113개사의 채용 규모는 2023년 10만9456명에서 2025년 9만2680명으로 15.3%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의 감소폭이 더 컸다. 30세 이하 직원은 26만7343명에서 23만434명으로 13.8% 줄었다.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2%에서 18.3%로 떨어졌다. 반면 50세 이상은 17.5%에서 18.4%로 늘어 30세 이하를 넘어섰다.
신규채용 시장에서도 젊은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신규 채용에서 30세 이하 비중도 56.4%에서 51.1%로 낮아졌다. 유통·식음료·건설·통신 등 내수 업종에서 격차가 특히 컸다. 롯데쇼핑은 50세 이상 직원 비중이 44.1%였지만 30세 이하는 5.2%에 그쳤다. SK텔레콤도 37.0% 대 8.6%였다.
업계는 청년들이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첫 직장으로 들어갈 문이 좁아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업은 경력직을 선호하고 AI는 신입사원이 맡던 단순·반복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경험이 없어 취업하지 못하고, 취업하지 못해 경험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취업 늦어지자 연애도 안해
취업이 늦어지면서 독립 시점도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진학사 캐치 조사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구직자의 74%는 취업 후에도 당장 독립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주거·생활비 절약’으로 61%를 차지했다.
연애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중국·일본·미국·스페인 청년 8242명을 비교한 조사에서는 한국 20대 미혼 청년의 27.5%가 연애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애 경험이 없는 한국 청년의 실업 비율은 38.5%로, 연애 경험이 있는 청년의 12.9%보다 25.6%포인트 높았다.
‘연애가 싫다’기보다 취업과 돈이 먼저인 셈이다. 월급이 없으면 독립하기 어렵고, 독립하지 못하면 결혼을 계획하기도 쉽지 않다. 취업 준비에 시간을 쏟다 보면 연애에 쓸 시간과 에너지도 부족하다. 취업→독립→연애·결혼으로 이어지던 생애 경로의 첫 단추가 늦어지면서 뒤의 단계까지 함께 밀리는 모습이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청년의 독립은 늦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18~29세 미국 청년의 49%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2019년 37%에서 크게 늘었다.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가 배경으로 꼽힌다.
프랑스에서는 아예 일하지도, 공부하지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청년을 NEET(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로 관리한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NEET 비중은 2026년 1분기 13.1%로 나타났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청년 고용을 위해 15개 대책을 내놓았다. 학교와 기업의 연결을 강화하고 직업교육을 확대하는 한편 취업 과정에서 이탈한 청년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청년에게 스펙을 더 요구하기보다 노동시장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청년 실업률은 12.4%였으며, NEET 청년은 2억5700만명에 달했다. AI가 청년의 주요 진입 통로였던 중간숙련 일자리를 흔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미국 18~34세 1075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서는 96%가 임대료·식료품·공공요금 등 생활비를 걱정한다고 답했다. 27%는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답했다.
한 취업 플랫폼 관계자는 “최근 청년 구직자들은 단순히 취업이 안 된다는 것보다 어디에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안이 크다”며 “경력직 중심 채용과 AI 확산으로 첫 직장에서 경험을 쌓는 과정 자체가 어려워진 만큼 기업과 정부가 청년의 첫 진입 경로를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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